2012년 5월 26일 플로리다 마이아미에서 31살의 노숙자가 다른 노숙자의 얼굴 80퍼센트를 이빨로 물어뜯었던 사건이 있었다. 아무리 제지해도 순종하지 않고 결국 경찰 총에 피살된 그를 이름하여 뉴스에서는 'face-eating cannibal (얼굴 먹는 식인종)이라 했고 일부에서는 'zombie'라 부르기도 했다. 영어 발음은 '잠비'지만 우리말로 '좀비'라 한다. 'stop'을 '스탑'이라 하지 않고 '스톱'이라 하는 순 우리 영국식 발음이다.
'zombie'는 '영력(靈力)으로 되살아난 시체'라는 뜻으로 원래 아프리카 말 'zumbi'에서 1871년에 영어로 입수된 말로서 물신(物神)이라는 의미였다.
'zumbi'는 흔히 정신과에서 말하는 'fetish', 즉 이성의 구두나 장갑처럼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물건을 지칭하기도 했다. 무당들이 돈을 받고 써 주는 부적도 어쩔 수 없는 물신, 좀비랄 수 있다.
미국 남부의 루이지아나 사람들이 쓰는 크레올(Creol) 말로 'zombie'는 귀신이라는 뜻이고 스페인어의 'sombra'도 '어두운 그늘' 또는 귀신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극한상황에서 일반상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미신적으로 해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뜯어 먹는 행동을 하는 것이 어찌 가능한가. 일부에서는 이런 요즘 풍조를 'zombie apocalypse', 좀비 계시록(?)이라 명명한다.
플로디아에 이어서 텍사스, 루이지아나, 캐나다, 그리고 뉴욕에서 가장 가까운 뉴저지에서도 비슷한 '좀비' 사건이 터졌다 한다.
근래에 미국 마약 단속반을 바짝 긴장시킨 신종 마약 중에 'bath salts'(목욕용 소금)이 있다. 목욕물을 경수에서 연수로 부드럽게 하거나 향기롭게 하는 미용용 인공염분이 마약으로 쓰이고 있다. 이미 마약 디자이너들이 총냥이 불x처럼 동분서주하고 있다던데.
'배스 솔트'를 먹거나 흡입하면 인간의 가장 광적인 본능 이를테면 지금껏 죽어있던 파괴본능이 되살아나는 모양이라. 그래서 자해(自害) 본능이 강한 놈은 밑도 끝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자살을 하고 타해(他害) 본능이 센 사람은 아닌 밤중에 남을 해코지 하는 모양이라.
속 시원하게 죽은 플로리다의 그 노숙자도 평소에 피해망상 끼가 있었다 한다. 피해망상이란 남을 해코지하고 싶은 욕구의 광적인 반대 현상이다. 마치도 남자를 그리워하는 노처녀가 깊은 밤 자신이 겁탈 당하는 경우에 대한 공포심에서 자꾸 침대 밑을 점검하는 방어기전이나 다름 없다.
내 어린 시절 '학원'이라는 잡지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옛날 옛적 어떤 전설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 먹고 살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이 소(牛)로 보였다는 것. 왕이 그걸 걱정해서 어느 영특한 사신으로 하여금 세상을 돌아보고 다른 나라도 그런가 잘 살펴 보고 오라 했느니라.
그 영특한 사신이 어느 나라에 갔더니 사람들이 서로를 소로 착각하지 않고 식인을 하지 않기로 그 나라에서 제일 영특한 사람에게 그 비법이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네들은 바로 저걸 먹으니까 그 광기(狂氣)가 없어졌다 하더라니. 그게 뭐냐 하면 바로 파(onion)라. 그래서 그는 파의 씨를 자국에 입수해서 온 국민이 먹게 했더니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풍습이 없어졌다는 게야.
영어 슬랭에 'off one's onion'이 있다. 직역으로 파 (양파?)를 끊었다는 표현이면서 의역으로는 '미쳤다'는 뜻. 당신도 나도 무엇인지 별안간 끊으면 머리가 팽그르르 도는 모양이지. 근데 왜 하필이면 파일까. 과연 우리는 파를 열심히 먹어야 사람이 사람으로 뵌다는 말인가. 내 그리운 옛날 학원 학설에 의하면.
© 서 량 2012.06.10
-- 뉴욕중앙일보 2012년 6월 1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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