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뉴욕 퀸즈 출신 한희준이가 안타깝게도 아메리컨 아이돌의 최종 아홉 번째 자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얼마 전 한 심사위원은 희준을 'Heejun' 대신 'heeman'이라 운치 있게 불렀다. '히맨'은 '사내다운 사내'라는 뜻의 슬랭인 'he-man'과 발음이 같은 유쾌한 말장난이었다.
'he-man'은 1832년부터 미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슬랭으로 우리말의 변강쇠처럼 심하게 에로틱하지는 않지만 강하고 독한 남자를 뜻하는 속어다. 수컷들은 암컷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서로를 향한 독성을 타고 난 것으로 간주된다.
변강쇠는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우리 판소리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다. 변강쇠에 맞먹는 '옹녀'는 있는데 영어에서는 'he-man'에 맞서는 'she-woman'이라는 말은 왜 없을까.
잔인하고 혹독한 여자라는 뜻으로'she-devil'이라는 말이 1840년에 탄생했다. 농경사회에서 우리 변강쇠가 몸바쳐 사랑했던, '집에 계신다'는 뜻에서 유래한 순수한 우리말 '계집'에 비하여 수렵사회의 여자들은 독하고 악마적인 일면이 있지 않았던가 싶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당신은 프로이트의 이드(id), 자아(ego), 그리고 초자아(superego)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을 터이다. 'id'는 그냥 '이드'라 하는데 의역으로는 '본능'이라 한다. 갓난아기들의 육체적 요구나 어른들이 목에 힘을 주며 상호 협조하는 경향이나 사회적 질서를 위한 노인네들의 준법정신 같은 추세가 이드, 자아, 초자아의 좋은 본보기다.
'id'는 라틴어로서 영어의 'it'에 해당되고 우리말로 '그것'이라는 뜻이다.
'it-girl'이라는 슬랭이 있다. 직역하면 '그것-소녀'다. 인간의 속성이 그러하거늘 자꾸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해서 거시기하지만 1610년부터 'it'는 성교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it-girl'은 1904년부터 성적인 매력이 충만한 여자를 의미했다. 공교롭게도 그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정글북 (Jungle Book)'으로 명성을 떨친 인도출신 영국시인, 1907년 노벨 문학 수상자 키프링(Rudyard Kipling: 1865-1936)이었다.
우리말에 있어서 '그것'은 너무나 현대적인 단어다. 좀더 토속적으로는 특히 전라도 방언에서처럼 당신이 자주 듣는 '거시기'야말로 영어의 'it'에 해당되는 말처럼 느껴진다.
오해하지 말지어다. 영어에도 딱히 거시기라는 단어는 따로 있거늘. 말을 하다가 어떤 말이 생각이 안 날 때 우리는 '그거 뭐야' 하지만 양키들은 'whatchamacallit' (워츠머콜잇)이라 한다. 이것을 자세히 풀이하면 'what you may call it'을 후다닥 빨리 하는 말이다. 'thingamajig' (씽어머직)이라는 고리타분한 단어도 있지만.
약간 뉘앙스가 다르게 우리가 거시기, 그거 뭐야 하는 말은 'you know what'이라 하고 거시기 누구야, 할 때는 'you know who'라 한다. 그토록 거시기는 직설적인 표현을 은근슬쩍 숨기는 아주 내숭스러운 어휘다.
거시기는 워낙 명사지만 '거시기하다' 할 때의 거시기는 형용사로 쓰인다. 깍듯한 표준말로는 '무엇하다'라 한다. 당신이 상대방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할 때 '말씀 드리기 무엇하지만'이라 하는 대신 '말씀 드리기 거시기하지만' 해 보라. 듣는 이가 십중팔구 픽! 혹은 빙그레 웃을 거다.
그만큼 우리는 본능적으로 'it'라는 의미의 무엇인가를 거북살스럽게 감추면서 누가 뭐라지도 않는 마당에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공연히 어색할 때 쑥스럽게 웃는 우리들... 어떤가, 당신이 듣기에도 좀 거시기한가?
© 서 량 2012.04.01
-- 뉴욕중앙일보 2012년 4월 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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