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말굽 화석 / 조성자

서 량 2012. 2. 17. 11:35

 

말굽 화석                     


                                             조성자


 

흙의 감촉으로 방향을 잡는다. 때로 바람의 이동 경로를 따르지만

길을 따라 어디든 떠나는 것은 운명이다. 발원지는 출생의 비밀

같은 것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나아갔던 것일까.

초원이 쇠하여 사막이 되는 아득한 천만 년 북방으로 남방으로

다시 중앙아메리카로 야생의 족보는 이어지고 있다.

풍수 고른 반도에 정착해 농군으로 땅을 섬기며 살고도 싶었다.

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팔자걸음을 걷는 무구한 종족이 되고도 싶었다.

펄펄 뛰는 운명을 둘러메고 협곡마다 매복해 있는 들짐승들과의

한 판 승부는 구전으로 유전되다 이젠 단물 다 빠졌다.

들잠을 자는 삶이란 바람을 경배하고 땅의 마음을 두 손으로 받는 일

산과 강을 어미처럼 공경하는 일이라 했으나 공격이 앞서야 했다.

성난 코요테와 정면으로 맞서는 난장으로의 투신은 길었다.

 

말굽 화석엔 평원을 가로지르는 이동의 행렬이 보인다.

갈기를 세우고 대륙의 심장을 겨냥하던 전사들의 포효가 들린다.

울음을 살라 연기를 피우며 도래지를 찾는 노쇠한 가장이 만져진다.


인디언 마을을 지나다 미간 골 깊은 추장에게서 산 말굽 화석

여기가 어디인가 外地라는 말도 자꾸 쓰다듬다보면 뭉근해진다.

 

 

-- 현대시학 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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