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1일과 2월 1일 양일은 실로 뜻 깊은 이틀이었다. 한국의 걸그룹 '소녀시대'가 미 전역 티브이 방송 CBS의 데이비드 레터맨 쇼와 ABC의 'Live with Kelly'에 출연해서 노래를 깜짝 놀라게 잘 불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녀시대'는 미국에 'Girls' Generation'이라는 이름으로 강렬한 첫발을 내디뎠다. 동양을 대표하는 경우에 아주 걸맞게 노래 제목도 음양이론에 입각한 'The boys' 였다.
'girl'은 13세기경 'gyrle'라 했는데 남녀에 상관없이 '어린이'라는 뜻이었다. 이 말이 14세기말경에 '여자아이'가 됐고 15세기 중엽에는 미혼녀라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성(性)에 민감한 공자가 "남녀칠세부동석"이라 목이 아프게 설파했지만 어린애들을 무성(無性)으로 보는 시선도 괜찮은 시선이다. 몸매 가녀린 어린아이들은 위아래가 울퉁불퉁한 육체파 성인 남녀처럼 얼른 성별이 구분 되지 않는 법이다.
우리말의 소년(少年) 또한 엄밀히 말해서 '적은 나이'라는 뜻이므로 'girl'처럼 남녀에 관계없이 어린아이를 지칭해야 된다. 그러나 아뿔싸, '소년'은 남자애라는 뜻이다. 어느새 양키들의 어린이를 지칭하는 무성의 'girl'은 계집아이로 변했고 동양의 어린이를 지칭하는 무성의 '少年'은 사내아이가 됐다.
'boy'는 13세기경 'boie'로 표기했는데 '악당'이나 '노예'라는 뜻이었다. 우리말의 '머슴'에 해당되는 말. (경상도 사람들은 사내아이를 '머슴아'라 한다.) 옛날 미군부대에서 심부름을 하는 어린애를 '하우스 보이'라 불렀다. 요사이도 영화에서 양키 깡패들은 자기의 부하들을 "My boys" 라 한다.
'The boys'에 누누이 반복되는 가사, "Girls bring the boys out"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여자애들이 남자애들을 끌어낸다"라며, 에헴, 다소 외설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수밖에 없거늘. 여자애들이 남자애들을 끌어낸다는 말은 시쳇말로 계집이 사내를 유혹한다는 의미와 대동소이하다.
이쯤 해서 당신은 어릴 적 계집애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덤벼들어 가위로 고무줄을 자르던 기억이 날 것이다. 계집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면서도 부지부식간에 사내아이들을 의식했을 것이고 당신은 그들의 흥겨움에 '깽판'을 놓음으로써 이성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던 것이다. 당신의 행동은 자못 악당다웠다.
영어에는 'woman friend'나 'man friend'라는 단어가 없다. 그 대신 얘네들은 꼭 'girlfriend', 'boyfriend'라 한다. 이것은 남녀가 사랑을 할 때 심성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그들의 간곡한 희망사항인지도 모른다. 계산이 앞을 가리는 어른들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은 애들이 하는 짓이다.
'보이프렌드'와 '걸프렌드'를 '남친', '여친'이라 하는 우리말은 어떤가. 밭에서 일하는 힘을 보이는 '밭 전'자에 '힘 력'자가 합쳐진 사내 남(男)과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는 형상의 계집녀(女)가 연상될 뿐 우리의 남친과 여친은 영어에 비하면 좀 싱거운 기분이 든다.
남자가 자신을 비하시키는 호칭을 쓸 때 소자(小子)라 한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스스로를 낮춰 말할 때 소녀(小女)라 하느니라. 그리고 소녀(少女)가 쑥쑥 성장하여 대녀(大女)가 될 수 없듯이 소녀의 남성형을 소남(少男)이라 하지 않고 소년이라 일컫는 우리의 언어감각도 좀 까다롭고 우스운 데가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소녀시대'를 극구 칭송하는 바이다. 남정네들을 훌륭하게 밖으로 끌어낼 미래의 대한민국 여성들이여, 그대들의 앞날에 부디 영광이 있을지어다.
© 서 량 2012.02.04
-- 뉴욕중앙일보 2012년 2월 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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