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은 고대영어로 'pinn'이라 했고 본래 말뚝이나 빗장이라는 뜻이었는데 '깃털'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pinna'와 말의 뿌리가 같다.
말뚝과 깃털이 어학적으로 한통속이라니 어찌된 영문인가. 상상력이 예민한 당신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옛날 양키들이 금속의 압정 대신 엊그제 숲에서 잡은 야생조의 깃털 심지로 무엇인지 토벽(土壁)에 꽂아두는 광경이 떠오를 것이다. 자세히 보면 깃털 심지의 뾰족한 끝이 보일지도 모른다.
영어 모음에서 'i'와 'e'는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pin'과 'pen'이 같은 말로 들린다. 18세기 말까지 서구에서는 동양의 붓 대신에 깃털로 만든 펜을 사용했다. 좀 어려운 단어지만 'pinnacle(정점)'의 'pin'은 꼭대기 혹은 꼭지라는 뜻이다. 어린애가 버르장머리 없이 굴 때 '꼭지에 피도 안 마른 것이...' 하는 바로 그 꼭지다. 말뚝과 깃털과 펜과 꼭지는 같은 말에서 유래했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라는 금언이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은 즉 무력보다 언어의 힘이 더 무섭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우스개 소리로 세치 혀끝과 네치 거시기 끝과 다섯 치 붓끝을 조심하라는 우리 속언과 깊은 관련이 깊은 말이다.
'pencil'은 고대불어에서 '붓'이라는 뜻이면서 라틴어의 '조그만 꼬리'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1929년에 발견된 항생제 페니실린(penicillin)도 '막대기' 모양으로 생긴 곰팡이 종류에서 척출해낸 것이다. 동물의 꼬리는 잘 보면 막대기처럼 생겼다.
인류의 종족보존을 위한 유일무이한 도구인 'penis'는 워낙 라틴어로 '꼬리'라는 뜻이었다. 어쩌다 말뚝과 깃털과 펜과 꼭지와 남자의 성기와 꼬리가 다 한통속이 된 것이다.
동물학적으로 꼬리는 척추의 말단부위가 연장된 기관으로 몸의 운동방향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니까 꼬리가 움직인다는 것은 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성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아양을 떠는 행동을 누가 누구에게 '꼬리를 친다' 한다. 대개 강아지는 주인에게 부산스럽게 꼬리를 흔들지만 사람은 물결치듯 잔잔하게 꼬리를 치는 법이다. 그때 우리는 있지도 않은 상상의 꼬리를 요동하지 않고 전신의 중추신경을 주관하는 등뼈의 끝부분을 은밀하게 진동하는 것이다.
'bright-eyed and bushy-tailed'라는 우스운 속어가 있다. 눈이 반짝이고 꼬리가 풍성하다는 말이지만 에너지가 충만하고 열성이 넘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 관용어다. 그래서 당신의 양키 상사가 당신에게 "I want you to be bright-eyed and bushy-tailed tomorrow morning." 이라 말한다면 그것은 다음 날 아침에 원기 왕성한 상태로 일터에 나오라는 전언이다.
'tailgate'는 문자 그대로 뒷좌석이 강당만큼 널찍한 차, 스테이션 왜건 뒤꽁무니의 커다란 문을 뜻했지만 1951년부터는 앞차를 위험천만하게 바짝 쫓아가는 운전 수법을 일컫는다.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백수건달 같은 양키 남자친구에게 만약 당신이 'Do not tailgate girls'라 하면 외국인 티가 나면서도 아주 훌륭하게 우스운 영어가 될 것이다.
몸을 상할 정도로 누가 일을 과도하게 할 때 우리는 '뼈빠지게 일한다' 하는데 양키들은 'work one's tail off'라 한다. '꼬리가 빠지게' 일을 하다니. 즉 이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너무 일을 열심히 하면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간다는 이론이다. 요는 그것이 삐걱대는 뼈냐 물결치는 꼬리냐 하는 것이 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 서 량 2012.01.22
-- 뉴욕중앙일보 2012년 1월 2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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