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48. 누가 성공하나

서 량 2012. 1. 9. 05:29

 새해를 경하하는 덕담 중에 으뜸가는 문구는 복과 행복에 대한 기원이다. 영어로는 거두절미하고 'Happy New Year'라 한다.

 

 허리를 꺾고 삼가 읊조리는 근하신년도 좋지만 운수대통하고 만사형통하라는 과장된 사자성어가 연하장에 쓰여 있어도 크게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다. 새해에 원하는 바를 성취(成就)하라는 말 또한 은근히 마음 든든해진다.

 

 연하장에 '성공(成功)'하라는 기원을 딱히 들어본 적이 없다.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는 사업가에게 '새해는 꼭 사업에 성공하십시오' 하며 당신은 호들갑을 떨지 않을 것이다.

 

 'succeed' '성공하다'는 현대적 의미로 자리잡은 14세기 말 이전에는 불어와 라틴어로 '이어받다'는 뜻이었다. 아직도 'succeed'는 가문의 전통이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는 뜻으로 쓰이는 좀 수상한 동사다. 개인의 능력을 십분 존중하는 실력 위주의 양키들이 성공이라는 개념에 조상의 재산을 계승한다는 뉘앙스를 섞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요행에 기대는 인간의 심리는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신은 어느 어둑한 맨해튼 지하철에서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재채기를 한 적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God bless you'라 소리쳤을 것이다. 그것은 막강한 신의 가호에 의하여 폐렴에 걸리지 말기를 기원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한 애타심(愛他心)의 발로에서였다.

 

 16세기 말부터 쓰이는 'Goodbye' 'God be with ye: 신이 함께 하소서'라는 좀 구질구질한 기원이 줄어든 말이다. 'ye' 'you'의 고어. 이것은 사람들끼리 헤어질 때 전지전능한 신이 상대의 앞길과 장래를 보살펴 주기를 소원하는 강력한 덕담이다. 우리말의 '살펴 가십시오'가 한 개인의 어정쩡한 시력에 발길을 의존하는데 비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보호책이다.  

 

 'Godspeed' 'Good luck' 'Goodbye'를 짬뽕시켜 놓은 뜻이다. 이 말은 15세기 중엽부터 쓰이기 시작한 결별사(訣別辭)로서 요사이도 가끔 듣는 고풍스러운 표현이다. 언제 다시 볼지 기약도 없이 헤어지는 마당에서 '행운을 빕니다' '부디 성공하십시오'라 말해주는 정취가 물씬하고 애절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표현에 '빨리' 가라는 뜻이 숨어있는데 있다. 소위 우리말 남도 사투리로 '싸게 싸게 가 보더라고...'에서처럼 얼른 떠나라는 속전속결의 성급함이 숨어있듯이.    

 

 'succeed'처럼 '~eed'로 끝나는 'speed'는 본래 8세기경 고대영어에서는 '성공'이라는 뜻이었고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는 13세기 때 생겨났다. 그러니까 양키들은 근 500년 동안을 빠른 것이 성공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동양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속설이 무색해지는 사고방식이다.

 

 우리말의 성공이란 공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양키들이 좋아하는 물려받는다는 뜻인 'success'와는 완연히 다른 독립성이 넘치는 개념이다. 이때 공() '장인 工'자에 '힘 力'자가 합쳐서 이루어진 말로서 문자 그대로 '장인의 힘'이라는 뜻. '공든 탑이 무너지랴'에 나오는 바로 그 ''이다.

 

 공부(工夫)의 '지아비 '자는 명실공히 상투 틀고 삿갓 쓴 지아비의 모습이다. 공부는 남자만 한다는 말인 듯싶다. 또 한편 지아비의 사람이라 하여 기혼녀를 부인(夫人)이라 부르느니, 정히 그렇다면 결혼한 여자도 능히 공부를 할 수 있느니라. 모쪼록 지아비들과 그의 부인들은 새해에 열심히 공부하여 부디 성공할지어다. 이 참에 억울한 사람들은 '며느리 부(婦)'자가 들어가는, 공부는커녕 시어머니 밑에서 죽자고 일만 하는 부인(婦人)들뿐이로다.  

 

 

© 서 량 2012.01.08

-- 뉴욕중앙일보 2012 1 11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