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47. 나무 그늘 아래서

서 량 2011. 12. 27. 21:10

 지구촌은 연말을 기해서 크리스마스라는 경하의 물결에 술렁이고 있다. 요사이는 'Merry Christmas'보다 'Happy Holidays'라고 축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일주일 상관으로 연이어 있기 때문인지 이를 뭉뚱그려서 그냥 휴일이라 부르는 점도 있지만 이것은 기독교가 타종교인들에게 정치적으로 공정하기(politically correct) 위하여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의미를 슬쩍 빼놓는 배려심이 보이는 시대추세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는 기독교식의 전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holiday'는 고대영어에서 'holy day'라 했고 그 뜻도 문자 그대로 '안식일'이라는 뜻이었다. 일에서 손을 떼고 휴식을 취하는 날은 성스러운 날이다.

 

 'holy'는 기독교 이전 시대에는 'hal'이라 했는데 그 뜻은 건강(health)이었던 것이 당신의 흥미를 도발시킬 것이다. 아직도 독일어의 'heil'과 영어의 'hail' '만세!'라는 뜻이고 두말할 나위 없이 만세는 건강하게 만년이라는 세월을 살라는 과장된 기원이다.

 

 'merry'는 고대영어 'myriage'에서 생겨난 기쁘거나 상냥스럽다는 의미였고 원래는 'short-lasting: 짧게 지속되는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한다. 요사이 자주 듣는 말로 'Time flies when you are having fun: 재미있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속언을 방불케 하는 개념이다. 그렇다. 12 24일 오후부터 다음날인 25일 저녁 때까지의 시간은 누구에게 항의를 제출할 틈도 없이 그렇게 후닥닥 우리를 지나쳐버린다.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휴식(休息)이라는 한자어를 살펴보았다. ''휴에 ''식이다. 처음의 '' 'rest'한다는 뜻이고 두 번째의 ''은 숨을 쉰다(breathe)는 뜻이다. 좀 생각해보면 옛날 중국인들은 작업을 중단하고 'take a break'를 할 때 ''의 글자 모양처럼 사람이 나무에 기대거나 나무 그늘 아래서 부동자세로 숨만 쉬는 자세, 소위 무협소설에 나오는 운기조섭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요사이처럼 휴일이면 장사꾼들 등쌀을 이기지 못해서 밖에 나가 이것저것 남에게 줄 선물이나 오랫동안 별러왔던 가구를 장만하는 풍속과는 뻐근하게 좋은 대조를 이룬다.

 

 휴게(休憩)라는 한자어도 유심히 뜯어봤다. ''자는 전기한 '휴식'과 다름이 없으나 '' '휴식'할 때의 식에 혀 설()이 합쳐진 것이 아닌가. 옥편에는 ''과 마찬가지로 ''게라고 나와 있지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휴게에는 사람의 혀가 중요관건이 된다. 즉 쉬는 사람들은 숨만 고르게 쉬는 것이 아니라 혀를 놀려서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는 사연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휴게는 휴식에 비하여 좀 여유가 있고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상태다. 예나 지금이나 휴게실은 수다를 떠는 장소다.

 

 즐거운 휴일에 하필이면 쉐익스피가 햄릿의 입을 빌려 남긴 임종 직전에 그의 절친한 친구 호레이쇼의 팔에 안겨 읊은 맨 마지막 대사가 생각난다. 아마도 휴식이라는 단어에 골몰하다가 'rest'라는 영어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중대한 교훈이라도 설파하듯 "The rest is silence. -- 남은 것은 침묵이다"라고 말한다. 옛날 대학시절에 이 부분을 굳이 "휴식은 침묵이다"라고 해석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rest'에는 쉰다는 뜻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사이 한국 티브이를 석권하는 역사드라마의 종결부분은 대개 사랑하는 남녀가 남은 평생을 나무 그늘 아래서 말없이 쉬엄쉬엄 쉬어가며 잘 살았다는 사연이 많던데.

 

 

© 서 량 2011.12.26

-- 뉴욕중앙일보 2011 11 2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