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46. 이마를 맞대고

서 량 2011. 12. 11. 13:01

 싸운다는 뜻의 'fight' 5 5백여 년 전에 쓰였다는 인류 최초의 말, 전인도유럽어의 'pek'에서 유래했는데 털이나 머리칼 따위를 잡아당기거나 잡아뜯는다는 의미였다. 발음도 비슷한 현대영어의 'pluck'에 아직 'pek'의 의미가 그대로 남아있다.

 

 옛날 옛적 인류의 조상들은 한 사람을 공격하고 싶을 때 상대의 체모나 머리칼을 잡아당겼던 모양이다. 어릴 적 길거리에서 여자애 둘이서 맞붙어 싸울 때 서로 머리칼을 쥐어뜯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국 뉴스를 들으면 겁이 벌컥 난다. 뉴스앵커들의 말투가 모질고 야무질뿐더러 그 뉴스 내용도 살벌하기 그지없다. 국회에서 무슨 안건을 '강행처리'하고 촛불시위를 하는 젊은이들이 경찰과 '전면대결'한다는 소식 따위가 나를 덜덜 떨리게 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다지도 독한 인간들이 됐는가. '힘내라!'는 뜻으로 우리가 걸핏하면 내뱉는 '파이팅!'은 또 무슨 야만적인 충동질인가. 아닌 밤중에 싸우라니. 누구하고?

 

 영어로 '대결하다' 'confront'. 이때 'con' 'com'의 뿌리에 해당되는 말로서 이를테면 'company: 회사', 'comrade: 동지', 'companion: 반려자'에서처럼 '함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confront' '앞을 함께하다'는 뜻이다. 앞? 앞이 어디인가.

 

 ''을 뜻하는 'front' 워낙 13세기경 고대불어로 '이마' 또는 '눈썹'이라는 의미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숭이에서 진화된 직립인간이 어느 날 두발로 일어섰을 때 가장 튀어나온 앞부분은 이마, 혹은 눈썹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의 양키들이 서로 대결할 때 이마와 눈썹을 마주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귀추가 아닌가.

 

 아니다. 우리말로 '이마를 마주하다'는 상호간 의견을 교환한다는 뜻이다. 말인즉 서로 싸우는 사태란 상대를 두들겨 팬다기보다는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는 말이 되느니, 도무지 어찌된 영문인가. 이것은 우리가 서로를 공격함으로써 의견을 교환했다는 말인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공격성이 필수조건이었다는 사연인가.

 

 '공격'을 영어로 'aggression'이라 한다. 당신은 이 단어의 스펠링을 잘 살펴본 다음에 'gress' 부분에 신경을 곤두세워 주기를 바란다.

 

 고대영어에서 'gress'는 어디로 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a'에는 부정관사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을 뜻하는 부사로도 쓰인다. 예를 들면 'float'는 그냥 '뜨다'라는 말이지만 'afloat' '둥둥 뜨다'가 되고 'glow' '달아오르다'이지만 'aglow' '활활 달아오르다'라는 뜻이다. 구수한 남부 영어로 금방 간다는 말을 'I am a-coming'이라 한다. 그러니까  'agress' '와락 나가다', 즉 공격한다는 말이 된다.

 

 당신은 이제 말할지어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 'congress'는 'con + gress' 즉, '함께 간다'는 뜻이라고. 우리의 국회는 함께 발전해 나가기 위하여 몸싸움을 하느니라. 철부지 어린 시절에 우리가 골목에서 치고 박고 쌈질을 할 때도 어른들은 뒷짐을 진채 싸워야 키 큰다고 소리치지 않았던가.  

  

 내친김에 'gress'가 들어가는 단어들을 나열하노라. 'digress: 빗나가다', 'egress: 밖으로 나가다', 'transgress: 위반하다', 'regress: 역행하다', 그리고 'progress: 진보하다', 기타 등등, 더 떠들자면 입만 아프다.

 

 작금의 한국은하고 있는가, 진보하고 있는가. 지구촌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흉흉한 소문이 자자한 근래에 우리는 대관절 어디로 가는 중인가. 박치기라도 하듯이 이마를 맞대고 야당과 여당이 전면대결을 하면서.

 

 

© 서 량 2011. 12.10

-- 뉴욕중앙일보 2011 11 1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