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k(애스크)'를 'axe(액스)'라 발음하는 양키들이 많다. 'axe'는 '도끼'라는 말. 특히 흑인들이 그런다 싶지만 2010년 2월에 오바마 대통령마저 공개석상에서 'ask'를 'axe'라 발음했다고 지금껏 인터넷은 떠들어댄다.
일국의 대통령이 '요구하다'는 말을 '도끼'라고 발음하다니. 상상력이 예민한 당신은 영화에서처럼 상대방에게 권총을 들이대는 장면이 아니라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드는 정신병자를 연상할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 말을 좀 이상하게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뚜껑'이라 않고 '꾸떵'이라 했다. 'ㄸ'과 'ㄲ'을 바꿔서 발음한 것이다. 그는 '딸꾹질'도 '깔뚝질'이라 해서 놀림의 대상이 됐다.
영어나 우리말이나 말을 하다 보면 자음의 앞뒤가 바뀌기 마련이다. 16세기부터 일부 영국인들이 'ask'의 's'와 'k'를 바꿔서'aks'로 발음했다고 언어학자들은 주장한다. 공교롭게도 'aks'의 발음이 'axe'와 같기 때문에 사람들의 간담이 서늘해진 것이 큰 문제가 된 것이다.
'문제(問題)'는 당신도 알다시피 한자 말이다. '물을 問'자를 잘 들여다보면 '문 門'자의 한 가운데에 '입 口'가 떡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몇 천년 전 중국사람들이 무엇을 물어보고 싶을 때 지금 당신과 나처럼 조용히 구글 검색을 하지 못하고 남의 집 문을 시끄럽게 두들겨 질문을 했다는 역사를 증명한다.
질문이라는 뜻, 'question'의 어간인 'quest'는 무언가 '추구하다'는 말이다. 자고로 그 대상이 어여쁜 이성이건 고매한 이상이건 인간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피눈물 나는 행로에 올랐던 것이다. 이를테면 신라시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그 처절한 탐구의식의 결과였다.
우리는 해답보다 질문을 중요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예수의 출중한 제자들 중에 유일한 의사 출신이었던 '누가(St. Luke)'가 설파한 "구하라. 얻을 것이다: Ask. It will be given to you"의 결과는 무엇인가. 싸구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달콤한 입맞춤이 끝난 다음 두 남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론의 다음은 정녕 무엇이던가.
'answer'는'question'에 비하여 좀 황당한 의식상태를 대변하는 말이다. 'answer'에 '해답'이라는 모범생다운 의미가 생겨난 것은 13세기경이다. 그 전에 'answer'는 옛날 양키들간에 대부분 '말대꾸'라는 의미로 쓰였다.
우리 말도 마찬가지다. 어른께서 말씀을 하실 때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면 엄청 버르장머리가 없는 행동인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현대 영어로 이것을 'talk back'이라 하고 자유분방한 양키들마저도 건방진 행동으로 간주하는 말버릇이다. 요사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악플'을 일삼는 누리꾼을 총칭하여 'anti(반대파?)'라고 하는 바로 그 'anti'가 'answer'와 말의 뿌리가 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해답은 반동분자들에게 있다는 말인가.
'묻다'나 '물어보다'나 매양 같은 말이다. '물다(bite)'도 '깨물다'같이 입으로 하는 행동이다. 갓난아기가 무엇이 궁금할 때 그것을 대뜸 입으로 가져가는 행동이나 베테랑 경찰이 이상한 백색 분말을 사고현장에서 발견했을 때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는 행동이나 사실 오십 보 백보다.
우리들끼리 말이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 봐야 아는 것도 답답할 노릇이다. 기어이 그 분별이 되지 않아 궁금하다면 당신은 부디 부드럽게 입을 열어 남에게 물어볼지어다. 단지, 너무 다급한 나머지 입으로 물어보는 행동이 지나쳐서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십분 주의해야 하느니라.
© 서 량 2011.11.25
-- 뉴욕중앙일보 2011년 11월 3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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