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갯잇에 사는 달팽이
임의숙
꿈을 꾸어요 나는
초침보다 빠르게 역류하는 풍경을 타고
아이는 달립니다
토란잎을 덮어 쓴 머리 위로
톡 톡 유리구슬들이 쏟아져 터집니다
초록의 월남치마 속
만삭으로 부풀어 오른 보라 꽃송이가 피어 납니다
살구빛 수웨터 보푸라기 솜처럼 보드랍습니다
언제나 뒷 모습만 보입니다
상여꾼들의 노랫 소리 솔뫼루 산을 넘어 갔어도
상쇠의 방울은 소름으로 돋습니다
딸랑 딸랑 정을 띠고 간다는 체온에 닿으려 아이는
더 짙은 어둠 속으로 숨어 듭니다
어둠이 웅크린 다리 밑에는
진득하게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등의 거머리 대신
질긴 돌미나리 줄기를 뜯습니다
민달팽이 한 마리 잎을 타고 기어 오름니다
두 개의 우물은 캄캄 합니다
꿈은 이상하지요 자꾸 목이 말라요
팔을 뻗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손등이
찰랑 물결을 쓰쳤을 때
잠시 멈춥니다, 벌어진 잠꼬대 사이로
열어 놓은 우물 속 낮 그늘을 조금 가져옵니다
실눈을 뜬 새벽녘 빛이었어요
누군가 말했어요
우렁각시가 다녀 갔다고
문을 닫아 둔 우물 속에서 꿈을 꾸어요
베갯잇에 사는 달팽이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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