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베갯잇에 사는 달팽이 / 임의숙

서 량 2011. 12. 23. 14:18

 

베갯잇에 사는 달팽이

 

                               임의숙

 

 

꿈을 꾸어요 나는

 

            초침보다 빠르게 역류하는 풍경을 타고

아이는 달립니다

토란잎을 덮어 쓴 머리 위로

톡 톡 유리구슬들이 쏟아져 터집니다

초록의 월남치마 속

만삭으로 부풀어 오른 보라 꽃송이가 피어 납니다

살구빛 수웨터 보푸라기 솜처럼 보드랍습니다

언제나 뒷 모습만 보입니다

 

상여꾼들의 노랫 소리 솔뫼루 산을 넘어 갔어도

상쇠의 방울은 소름으로 돋습니다

딸랑 딸랑 정을 띠고 간다는 체온에 닿으려 아이는

더 짙은 어둠 속으로 숨어 듭니다

어둠이 웅크린 다리 밑에는

진득하게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등의 거머리 대신

질긴 돌미나리 줄기를 뜯습니다

민달팽이 한 마리 잎을 타고 기어 오름니다

 

두 개의 우물은 캄캄 합니다

꿈은 이상하지요 자꾸 목이 말라요

팔을 뻗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손등이

찰랑 물결을 쓰쳤을 때

잠시 멈춥니다, 벌어진 잠꼬대 사이로

열어 놓은 우물 속 낮 그늘을 조금 가져옵니다

실눈을 뜬 새벽녘 빛이었어요

누군가 말했어요

우렁각시가 다녀 갔다고

 

문을 닫아 둔 우물 속에서 꿈을 꾸어요

베갯잇에 사는 달팽이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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