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44. 보고 듣기

서 량 2011. 11. 14. 08:08

'see에'는 '뒤따르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영화의 '속편'이라는 말 'sequel', 또는 후유증이라는 의학용어 'sequelae'에서처럼 'se~'는 'see'에서 유래했다. 개가 범인을 추적할 때 냄새를 맡듯이 사람은 무엇을 뒤쫓아 갈 때 순전히 시력에 의존한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see'와 'say'가 희랍어와 라틴어의 같은 말 뿌리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두 단어는 발음 또한 비슷하다. 그 학설이 맞는다면 본다는 것은 말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무엇 혹은 누구를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없이 지나치는 사태는 나불나불 말하기를 좋아하는 서구인들의 심성에 크게 어긋나는 일일지어다.

 

'see'와 발음이 비슷한 것으로 치자면 영어의 'yes'에 해당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말의 'si'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예스' 또는 '예'라는 대답은 알겠다는 말이고 '본다'는 'see'와 '그렇다'는 'si'는 동일한 의사표현인 듯하다. 이것은 한 회사가 사람을 채용할 때 일차 서류심사에 붙은 뒤에야 상대를 인터뷰하는 동서양의 관습과 꼭 일치한다.

 

양키가 뭐라 솰라솰라할 때 그 말 뜻을 백 퍼센트 속속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당신은 대강 웃으면서 'I see'라 대답할 것이다. 바로 우리의 '알겠습니다'에 해당되는 관용어다. 이때 'see'는 'understand'와 같은 의미로서 보는 것이란 즉 상대를 이해하고 알아내는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척하면 삼척이다' 하지 않았던가. 사물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도 대뜸 알아차리는 재빠르고 성급한 심리적 눈썰미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누구를 본다는 말이 누구를 만난다는 뜻과 거의 맞물리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누가 'We have been seeing each other for a long time' 하면 그건 그들이 오래 동안 만나온 사이라는 뜻. 사람이 서로 자주 보면 모종의 행동도 같이 하기 마련이거늘. 그리고  'Are you seeing somebody?' 하면 누구를 사귀냐고 물어보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눈에 자주 닮는 일은 서로 친숙해지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또한 모든 감각현상을 시각적으로 처리한다. 보는 것 외에 남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냄새를 맡아 '보고' 물건을 만져 '보고' 음식도 맛을 '본다' 한다. 이때 '본다'는 말에는 '테스트해 본다'처럼 망설임이 깃들여진다. 장날에 물건을 살까 말까 들었다 놓았다 하는 행위를 시장을 '본다' 하고 눈을 내리깔고 상대를 훔쳐보는 혼사 일정을 '선 본다' 한다.

 

결혼식 서약 장면에서 'I do: 그러겠습니다'라 하지 아무도 'I will see: 그래 보겠습니다'라 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자신도 하객들도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따지고 보면 'Let me see...' '글쎄...'라 할 때도 'see'에도 눈치를 살핀다는 뉘앙스가 깃든다. 당신의 직장상사가 당신에게 무슨 일을 부탁했을 때 '하겠습니다'라고 적극적으로 대답할 때와 '해 보겠습니다'라며 별로 내키지 않은 태도를 보일 때를 잘 분별해야 하느니라.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영어속담을 '보는 것은 믿는 것이다'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당신은 유독 유식한 티를 내면서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읊어보라. 이것은 과연 시각이 청각을 단연 압도한다는 증거일까. 대관절 보는 것이 무엇이길래 'Out of sight, out of mind: 보지 않으면 마음에서 사라진다'라는 격언마저 생겼단 말인가. 게다가 어떤 이벤트를 끝맺음 할 때 '볼 장 다 봤다'라 말하는 우리말 관용어는 또 무슨 도깨비가 뒤보는 소리인가.

 

© 서 량 2011.11.13

-- 뉴욕중앙일보 2011년 11월 1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