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억새꽃 / 김정기

서 량 2023. 1. 5. 18:32

 

억새꽃

 

                          김정기 

 

 십일월이 떠나는 들녘에 서서

꽃을 피우는 친구여

 

밤마다 그림자가 나온다

연기가 나온다. 눈에서 입에서

버렸던 사람이 다시 찾아와

눈이 날리면 만날 수 있다고

알 수 없는 슬픔의 발원지에

힘든 나날을 이겨낸 나를 찾는 손짓이다.

 

늦가을 억새꽃으로 피어

바람을 타고 가는 길을 막는 손

물기 빠진 몸이

발붙인 웅덩이에서 물거울을 꺼내 본다

 

가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오는

그림자도 연기도

꽃이 되는 나이.

 

© 김정기 2011.12.01

'김정기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거운 깃털 / 김정기  (0) 2023.01.05
새 아침의 기도 / 김정기  (0) 2023.01.05
15분 뱃길 / 김정기  (0) 2023.01.04
실 / 김정기  (0) 2023.01.04
사진 두 장 / 김정기  (0) 2023.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