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15분 뱃길 / 김정기

서 량 2023. 1. 4. 19:09

 

15분 뱃길

 

                         김정기

 

쇠 침대에 누어서 바다를 본다.

바다는 술렁이며 몸에 와 감긴다.

초록색 긴 칼은 망명의 첫 밤을 다시 베어내며

흰색 홑이불 속에 안온한 주검을 깨운다.

간호사 마리아는 찬 손으로 뱃고동을 울리고

바다는 아주 조금 흔들린다.

막혔던 기도가 안으로 울리니

모진 말들이 사랑의 너울을 쓰고

15분 뱃길은 길고도 짧다

다른 사람들만 빠지는 줄 알았던

기계로 지어진 바다는 가을 벌판이다.

왼쪽 가슴에 닿았던 칼날을 거두고

반짝이 구두를 신으면 땅은 다시 꽃을 피워

휘청거리는 몸을 받아준다.

 

나흘 걸려 외운 방사선치료실 영문 표기판이 꿈을 꾼다.

 

© 김정기 2011.10.09

 

'김정기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아침의 기도 / 김정기  (0) 2023.01.05
억새꽃 / 김정기  (0) 2023.01.05
실 / 김정기  (0) 2023.01.04
사진 두 장 / 김정기  (0) 2023.01.03
사람의 마을 / 김정기  (0) 2023.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