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42. 바보같이 지내라

서 량 2011. 10. 17. 06:23

 금세기의 레오날드 다빈치, 토마스 에디슨, 또는 월트 디즈니라 불리는 애플 컴퓨터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2001105, 56세의 아까운 나이에 췌장암으로 죽었다. 그가 남긴 명언 중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입학식 축사의 마지막 말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는 경구가 세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 '배 고프게 지내라. 바보같이 지내라'

 

 'fool' 고대불어의 'fol'에서 유래했고 본래 '미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folly'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이다. 'fool'에는 미친 사람과 지능이 낮은 사람을 동일시하는 우리의 편견이 깊이 숨어있다.

 

 정상궤도를 벗어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도 바보라 한다. 빌 게이츠처럼 대학을 중퇴한 잡스도 20살 때 70년대 컴퓨터 산업의 고리타분한 기성체제를 향해 바보처럼 도전했던 것이다. 안일한 삶을 추구하는 모범시민은 역사에 남는 획기적인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

 

 인류의 마음을 뒤흔든 위인들 중에 월트 디즈니를 빼 놓을 수 없다. 그의 1941년 만화영화 'Dumbo'가 제작 70주년 기념 DVD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당신도 혹시 보았는가. 남산만큼 커다란 양쪽 귀를 날개처럼 펄럭이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이상하게 생긴 아기 코끼리를.

 

 어미 코끼리 'Jumbo'의 아들 '점보 주니어'는 귀가 깜짝 놀랄 만큼 크게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곡마단 단원들의 놀림감이 되고 'dumb'의 뒤끝에 'o'를 붙인 'dumbo'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dumbo'는 속어로 바보라는 뜻. 덤보는 이내 점보 젯(jumbo jet) 비행기처럼 나르는 재능을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재미없고 따분한 서커스 세상에 충격적인 파문을 일으킨다. 코끼리가 날다니. 새처럼.

 

 'dumb'은 고대영어에서 '벙어리'의 형용사였고 멍청하다는 의미였다. 현대어로도 'foolish'와 동의어다. 양키들은 말이 없는 사람을 바보로 취급한다. 'Silence is golden' --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이 아무 소용 없는 마음가짐이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목 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우리 속담이 그러하듯 우리는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궁즉통(窮卽通)이라 했거늘 기존의 언어체제가 바닥이 난 상태에서만 기상천외의 묘안이 떠오르느니라. 그리고 우리는 틀린 말을 하느니 차라리 벙어리같이, 바보같이 함구무언(緘口無言) 할지어다.

 

 온전한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하고 스스로 '덤보'와 비슷한 삶의 행로를 섭렵한 스티브 잡스의 천재적 비상(飛上)이 이룩한 업적에 고개를 숙인다. 그가 벙어리 냉가슴 같은 시대적 긴장상태에서 돌파구를 찾아 성취한 맹렬한 두뇌활동의 승리를 티에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 (The Waste Land: 1922)'의 시작부분을 읽으며 곰곰이 견주어 음미한다.

 

 ... Son of man, / You cannot say, or guess, for you know only / A heap of broken images, where the sun beats, / And the dead tree gives no shelter, the cricket no relief, / And the dry stone no sound of water.

 

 ... 인간의 아들이여, / 그대는 말할 수 없고, 추측할 수 없노라, 왜냐하면 그대는 오로지 / 한 무더기의 깨진 이미지와, 햇살이 어디를 매질하는지를 알고 있거니와, / 그리고 죽은 나무가 쉼터를 주지 않고, 귀뚜라미가 구원을 주지 않고, / 그리고 메마른 돌이 물소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 서 량 2011.10.16

-- 뉴욕중앙일보 2011 10 1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