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당신은 금발의 여자친구가 "It's gross!"라 하면 어떤 사물이 크다는 말이 아니라 징그럽다는 뜻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당신의 연봉에 대하여 언급할 때 'gross income'이라 하면 그것은 '징그러운 수입'이 아니라 세금을 공제하지 않은 '총수입'을 뜻한다.
'징그럽다'는 우리말 사전에 '보거나 만지기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흉하거나 끔찍하다'로 나와 있다. 이 말은 '증(憎)하다'에서 유래했다 한다. 옛날 말인 '거즛말'이 현대발음으로 '거짓말'로 변했듯이 '증'이 '징'으로 변했다. 거기에 싱그럽다, 또는 정지용의 시 「달」의 마지막 구절 "향그럽다"에서처럼 형용사를 나타내는 '~그럽다'가 붙어서 '증그럽다'가 '징그럽다'가 된 것이다.
'증하다'는 '모양이 너무 크거나 괴상해서 보기에 흉하고 징그럽다'로 풀이된다. 이때 '증'은 '미울 증'. 우리는 지나치게 큰 것을 미워하거나 징그러워한다.
아니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이른바 전라도 사투리로 하는 '워메, 징헌 거!'는 실로 감격적인 진술이다. 이 표현을 역겨운 발언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 징그러운 감각마저도 기꺼이 입수하려는 우리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은밀히 추구하는 성적(性的) 자극도 그 좋은 본보기다.
'hate'는 전인도유럽어로 'feel strongly', 즉 '강하게 느끼다'라는 뜻이었다. 기원전 약 3,500년 전 인도와 유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느꼈던 강력한 감정은 따스한 사랑보다 뜨거운 미움이었다는 추측이 든다. 마치도 갓난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아픈 존재의 울음이 터지듯 그때 그들이 체험한 강한 정서는 증오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개 원시적 인간의 심성은 지나치게 강한 자극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 'big'도 13세기에는 강하다는 뜻이었다가 14세기 말에 크다는 뜻이 첨가됐다. 큰 것은 강한 것이고 강한 것은 사람들에게 징그러운 자극으로 군림한다. 'big shot'이 다루기 힘든 중요인물이라면 'small potato'는 손쉽게 대처할 수 있는 시시한 사람이다.
인류의 역사는 호시탐탐 큰 것을 추구하는 시도로 점철된다. 그러나 크고 징그러운 것을 겁내는 사람들은 작고 아담한 대상을 찾아 헤맬지어다. 그런 맥락에서 'little people'은 한국 드라마에 출현하는 큰 회사의 성미 더러운 회장님이 아닌 소시민적이고 소탈한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
'마이크로 결사대: Fantastic Voyage'라는 제목으로 1966년에 한국에서 개봉됐던 영화가 있었다. 미국 정부가 특수부대를 동원하여 그들이 탄 잠수함을 미생물만큼 작게 축소시켜 한 과학자의 혈관에 투입해서 뇌의 응혈을 치료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 환상적인 여행을 마친 특수요원들은 'a whale of a time: 고래처럼 크게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것은 물상의 최소화를 현실화시킨 영화예술의 'big-time success: 커다란 성공'이었다.
이어령 석학은 그의 저서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서 쥘부채와 분재(盆栽) 따위를 고안해 낸 일본문화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가 또한 차갑게 지적했듯이, 일본이 일으켰던 임진왜란과 대동아전쟁의 실패로 미루어 보아 그들의 '확대 지향' 능력이 지극히 왜소했던 역사적 사실을 나는 크게 치하하는 바이다.
© 서 량 2011.03.05
-- 뉴욕중앙일보 2011년 3월 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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