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는 39세의 창백한 살빛의 백인 독신녀다. 얼핏 보면 흘러간 명화에 나오는 고지식한 기숙사 사감처럼 성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을 몇 마디 주고 받다 보면 금방 생각의 흐름이 당신이나 나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하는 여자야. 산드라가 이 주립 정신과 병원 병동에 기거한지는 어느덧 2년 가까이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퇴원할 기미는 요원하기만 해. 오리지널 입원이유는 죽겠다고 손목을 칼로 잘랐기 때문이었어.
이 병동에는 아주 괴팍한 성격장애 여자환자들이 입원해서 제집처럼 살고 있다. 근데 문제는 25명이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다는 거. 생명체들이 군집해서 살다 보면 서로 닮게 된다잖아. 그래서 주인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 잘 보면 강아지와 주인의 걸음걸이가 매우 비슷한 거 알아? 무릎을 꾸부리는 각도며 둔부 근육의 수축과 이완과 리듬이 너무 똑같은 장면을 당신도 본 적이 있지? 오래 같이 산 부부도 걸음걸이가 똑 같아. 특히 뒤에서 보면, 흐흐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벼르냐고? 응, 그거야, 에헴, 이 병동의 환자들이 서로의 못된 행동을 흉내낸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다.
이 환자들이 강아지와 부부와는 좀 다른 점이 뭐냐 하면 이들은 무의식적이 아니라 일부러, 고의적으로 남의 흉내를 낸다는 거라구.
몇 달 전부터 환자들이 심기가 불편하면 이상한 물건들을 집어 삼키는 행동이 유행하기 시작한 거야, 이 병동에 말이지. 엄마가 전화로 무슨 야단을 쳤다고 화가 나서 칫솔을 꿀꺽 삼키지를 않나. 동전도 삼키고, 볼펜도 통째로 삼키고, 얼마 전에는 안경 렌즈도 두 개 다 삼키고 그러더라. 그리고 난 다음에는 꼭 간호사에게 자기가 그랬다는 걸 알려준다. 어머머는 무슨 어머머야... 킥킥. 병원에 입원해 있는 처지에 간호사와 의사에게 그런 거는 꼭 자진해서 보고를 해야 되지 않겠어? 치료? 정신과 병원에서 무슨 그런 치료를 해, 치료는. 환자를 차로 한 10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응급후송을 하는 거지.
산드라는 여간하지 않고서는 다른 환자들처럼 저를 퇴원시켜 달라고 조르지를 않는다. 근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얼마 전에 퇴원 얘기가 나오길래 그거 괜찮은 생각이라고 팀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성의 뜻을 보였지. 그럴듯한 소원 아니야? 큭큭. 그날 밤에 산드라는 카톨릭 신자들이 목에 거는 묵주하고 각이 반듯한 십자가를 삼켜버렸어. 그것 만으로도 모자라서 볼펜 하나하고 갓 깎은 연필 두 자루를 연거푸 꿀꺽했지. 물론 남 앞에서 그런 거는 아니고 일단 그 행동을 한 다음에 얼굴이 더 창백해져서 간호사에게 보고를 한 거지.
산드라는 곧바로 옆 종합병원에 후송되어 배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묵주와 십자가와 볼펜 하나와 연필 두 개가 사진에 나왔는데 북적거리는 도시에 사람이 많이 붐비듯 비좁은 위 속에 물건이 많아서 이것들이 십이지장으로 넘어가서 진출하지를 못하고 있는 거야. 특히 각이 반듯한 십자가가 위의 출구에 박혀서 교통정체 현상이 일어난 거라.
그래서 산드라는 외과의사가 배를 가르고 위 내용물을 생선 배에서 알 꺼내듯이 다 꺼내고 난 연후 배를 봉합하고 그곳 외과 병동에 3일을 입원했다가 다시 내 병동으로 돌아왔다. 이런 경우에 "Welcome back!"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고 해서 우물우물 몸은 괜찮으냐고 물어 봤지. 그랬더니 글쎄 이 지지배 왈, 지가 십자가만 안 삼켰어도 수술을 면했을 거라고 외과의사가 말했다면서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는지 알아? 예수가 저한테 불친절했다는 거야. -- "Jesus was unkind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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