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테라의 성생활

서 량 2011. 9. 11. 09:48

테라는 콧날이 오똑하고 속눈썹이 긴 18살의 백인 계집애다. 당신이 믿기 힘들겠지만 6살 때 벌써 정신병원에 두어달 입원했던 적이 있었던 애야. 어떻게 6살 짜리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냐고? 6살 짜리가 정신병원에 얼마든지 입원할 수 있어. 근데 한국 드라마처럼 시청자들은 다 알고 당사자만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테라의 생부모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라. 어때. 이야기 초장부터 동정심이 좀 가지 않아?

 

테라는 생부모가 누군지 평생 모르면서 살아왔을 뿐 아니라 양부모가 너무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걔가 세 살때 고아원에 되돌려 줬대. 대한민국 대통령 하기가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투덜대던 노무현이가 나중에 한때 살기가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자기 생명을 포기한 거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각설하고, 테라는 두 번째 양부모 밑에서 지난 15년을 살아왔는데 당신도 잘 알다시피 올 나이 18살이면 춘향이 나이 또래니까, 그거 뭐야, 복근에 초코렛처럼 골이 파인 보이프렌드 하나쯤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그 근육질의 보이프렌드가 작년 여름에 덜컥 자살을 했다는 거라. 물어보나 마나 무언지 힘들어서 못해 먹겠으니까 그랬겠지. 테라는 비 내리는 어느 날 한적한 공원 참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하려다가 나무가지가 불어지는 바람에 땅에 떨어져 실신하고 여차여차해서 결국 내 병동으로 왔다.

 

눈치 빠르고 두뇌 명석한 테라는 놀랄만치 빠르게 우울증에서 회복한다. 젊은 것들은 회복이 빠른 법이야. 드디어 테라는 내 병동에서 영광스럽게 퇴원해서 낮동안 여러 정신병 환자들이 모여서 그룹상담도 하고 강의도 듣고 하는 프로그램을 다녔다.

 

내가 뭐랬어. 테라가 성춘향 나이 또래라고 했어, 안 했어? 춘향이는 전라도 남원이나 미국 뉴욕이나 이도령을 찾아다니는 게 당연해, 안 당연해? 근데 하필이면 이 인형처럼 생긴 양키 춘향이의 보이프렌드가 이번에는 같은 프로그램을 다니는 나이가 마흔살인 범죄자 정신병자, 그것도 성범죄자일 건 또 뭐냐. 뭐라고? 사랑에는 과거가 없다고? 킥킥. 테라는 그 보이프렌드와 병원 어느 버려진 빌딩 속에서 일주일을 동거하면서 프로그램에도 나타나지 않고 끼니도 걸르고 벌건 대낮에 둘이서 술을 처먹고 해롱대다가 구내 경찰에 잡혀서 다시 내 병동으로 재입원한다.

 

버려진 빌딩 속 보이프렌드와의 연이은 섹스를 잊지 못한다고 테라는 내게 말한다. 그 성범죄자는 일주일에 한 두번 버젓이 요사이 테라를 방문하는 거야. 환자 방문객들이 만나는 작은 강당에서 테라와 그는 남들이 보건 말건 열렬히 서로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코가 주먹만한 이몽룡과 금발의 성춘향이 말이지. 나는 테라의 성생활에 찬물을 끼얹기 위하여 며칠 전 법정에 가서 그녀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태위태한 정신상태인지에 대하여 강도 높게 진술했지. 판사는 내 편을 들어서 병원을 떠나겠다는 테라의 법적 요구를 거절했다.

 

어제 테라가 나는 어찌 법정에서 자기가 듣는 앞에서 자기를 창녀 취급을 했냐고 항의하더라. 정신과의사가 판사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의 어떤 행동을 좀 과장해서 말하는 수 밖에 딴 도리가 없는 법이라고 대꾸했지. 이런 정신과의사 생활이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그래도 할일은 대개 하는 사람이라고 쓸데없이 덧붙였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당신은 궁금할 거야. 안 궁금해도 괜찮지만 말이지. 그랬더니 테라가 뭐라는지 알아? 지가 나이 든 남자를 참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믿고 의지하는 지 정신과의사인 나에게 성적으로 접근한 적은 없다는 거라. 이쯤해서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소리쳤다. "Are you crazy?"

 

© 서 량 2011.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