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미리엄의 나쁜 습관

서 량 2012. 1. 21. 23:19

요새는 인터넷에 '맛집'이라는 문구가 참 많이 눈에 띈다. 수 년전에 한국에 갔을 때 내가 존경하는 문인 선배분이 점심을 사겠다고 해서 서울 어딘지에서 만나 음식점을 찾아 헤맨 적이 있었지. 그러다 그분이 "아, 여기가 먹자골목 같은데..." 하길래 깜짝 놀랬다니까. 이거, 한국말에 능수능란하지 못한 내가 잘났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라, 나는 그때 '한국 사람들은 이제 골목길도 먹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

 

먹는 거 좋아하는 우리들 심리를 내가 잘 알아요. 명색이 사람 마음을 공부하는 정신과의사로서의 직업의식도 있겠지만, 좀 기가 막히더라고. 우리는 욕도 먹고, 마음도 먹고, 여자도 따먹고, 돈도 떼어먹고, 남을 등쳐먹고, 말이 먹혀들어가고, 등등 하여간 눈앞에 뭐든 얼씬하면 먹어치워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거야. 식성 하나 짱이다, 안 그래? 소위 정신분석에서 얘기하는 '구강형' 의식구조... 응, 나는 그걸 굳게 믿어요. 그래서 하다하다 못해서 이제 우리는 '골목'까지 먹으려 하는구나, 한 거지. 으하하.

 

내가 맡아 주관하는 '성격장애' 입원병동에 입원 중인 30대 후반인 미리엄은 심사가 뒤틀릴 때마다 이상한 물건을 삼키는 습관이 있다. 이를테면 걔는 수틀리면 칫솔을 삼키는 거야. 걔가 그러면 부랴부랴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서 내시경 할때 쓰는 기구를 위에 집어넣어 칫솔을 꺼집어 낸다. 얼마 전에는 개복수술도 했어요. 걔는 칫솔 다음으로 볼펜도 잘 삼키지.

 

한 번은 내가 아침 회진때 거드름을 떨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글을 쓰는 펜이나 연필(pencil)이나, 그거 뭐야, 종족보존의 유일무이한 도구인 남자의 페니스나, 하나같이 고대 희랍어, 라틴어, 중세 불어로 '꼬리' 혹은 '뾰족한 물건'이라는 뜻이였던 거, 느네들 알아? 했다. 그러니 미리엄이 좋아라 삼키는 펜은 무의식적으로 페니스라고 엄숙한 선포를 한 셈이거든. 뭐야. 음란한 발상이라고? 아니야. 아주아주 학구적인 발상이지.

 

미리엄이 업셋(upset)하는 이유? 그거야 대개 지 어머니, 오빠, 언니 같은 가족과 전화를 하고 난 다음에 마음이 뒤죽박죽이 되는 거야. 업셋이 무슨 말이냐고? 아 그거야 워낙 영어로 '뒤집힌다'는 뜻이지. 우리말로도 '눈(깔)이 뒤집힌다'라 하잖아. 눈이 뒤집히면 어떻게 돼? 눈이 뒤집히면 눈에 뵈는게 없어지지.

 

어제 오후 퇴근시간에 타이밍을 맞춰 미리엄이 또 볼펜을 하나 삼켰다. 절대로 칫솔을 못 쓰게 하고 펜을 못쓰도록 전 병동직원이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었지만, 걔는 눈깜짝할 사이에 다른 환자가 쓰고 있는 펜을 나꿔채서 배고픈 거북이가 붕어 삼키듯이 꿀꺽 삼켰어. 잠시 후 응급대원들이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걔네들은 열 몇번 정도 미리엄이 이런 짓을 하는 걸 취급했으니 하나도 급할 것 없다. 사람 몸이라는 게 기가 막힌데가 있어서 당장 생명에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 좋으면 내버려 둬도 다음날 고스란히 똥으로 나오는 수도 있어요.

 

미리엄을 미워하고 지겨워하는 응급대원이 인상을 팍팍 쓰면서 속삭이듯 물어 보더라. 하필이면 금요일 퇴근시간에 그짓을 할 껀 또 뭐냐는 생각을 속 깊이 감추고 말이지. 'Why did you do it again? -- 왜 또 그짓을 했어?' 그러니까 미리엄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 "It's complicated.-- 사정이 복잡해요" 하는 거야.

 

나는 어쩌나 하고 잠시 망서리다가 또 학구적인 생각에 몰입한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내가 워낙 학구적이니까. -- 응, 그래. 이 바보천치 같은 미리엄아, 니가 펜하고 페니스하고 말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알리가 있겠느냐. -- 그리고 내친김에 또 이런 생각도 들더라. -- 그나저나 오늘도 또 퇴근이 많이 늦어지네. 나도 한참 심사가 뒤집히고 배도 출출한데 얼른 집에 가서 뭘 꿀꺽 삼켜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