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냉동실 속 사진

서 량 2010. 12. 7. 12:30

이 환자 얘기는 당신에게 꼭 해 줘야겠다 했지. 그것도 내 감동이 생생할 때

얼른, 기억의 빛이 바래기 전에 꼭 같이 킥킥대고 싶었다는 거. 근데 이 환자는

40대 후반, 멀리서만 봐도 로마인의 후계로 보이는 눈이 주먹만 하고

얼굴 골격이 비너스 조각처럼 생긴 여자라는 것까지는 좋아. 누가 뭐래.

근데 이 여자가 깡패 출신이다. 20대 30대 시절에 오토바이를 타고 미대륙을

떼를 지어 섭렵하던, 왜 있잖아, 팔뚝에 이상한 문신을 그려 넣고 가죽잠바를 입고

말끝마다 트럭 운전사보다 더 심하게 욕을 하는 그런 이상한 오토바이족 여자야.

성미가 뭐 같아서 수틀리면 남자건 여자건 주먹으로 두들겨 패는 이상한 여자.

그래서 감옥도 몇 번을 갔다 온 여자. 한동안을 마약중독에 빠졌다가

재생의 길을 걷겠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중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어쩌다 저쩌다 하다가 나를 찾아오는 인연에 빠진 여자.

그러다가 재작년인지 갑자기 소식이 끊어지면서

내 예감에 아, 또 마약중독이 재발 했구나 싶었지.

요 얼마 전에 밑도 끝도 없이 전화가 와서 나를 다시 보겠다 해서 그러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마약에 빠졌는데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났다는 거라 이 여자가. 나는 사실 내가 한 말이 기억에 별로 없어.

미친 사람이 한둘이라야 내가 한 말을 기억하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안그래?

하여간 그랬다니까 그런 줄로 알고 건성으로 응, 응 하면서 내가 뭐랬지? 하고

정답을 알고 있는 시험관처럼 거만한 말투로 물어봤더니 글쎄

"너의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너의 급하고 삐딱한 성격이다. 너는 니가 자신의 성격만

비록 고치지는 않더라도 조금 다듬고 손질하면 참 좋은 사람이 될 거다" 라고

말했다는 거라. 말을 듣고 보니 아, 참 나다운 말을 했구나 싶어서 얼른

그래! 니가 그말을 기억했다니 참 신통하구나! That's excellent! 하며

부추겨 줬다. 그래, 그럼 요새는 마약을 안 하냐? 하니까 안 한지가 6개월이 넘었대.

근데 가장 급한 스트레스는 뭐냐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지 아들 얘기를 하는 거라.

20대 중반의 아들이 벌써 몇 년째 어떤 시건방진 여자친구와 동거를 한다나 어쩐다나.

그 아들의 '여친'이 자기를 알기를 뭣처럼 안대. 옛날 같으면 주먹으로 두들겨 패도

몇 번을 팼을 거라나. 근데 내가 말한 대로 지 성질을 다듬기로 작심을 했기 때문에

꾹꾹 참았다는 거라. 어때? 신통하지 않아? 당신도 나처럼 감탄을 해 줬으면 하는데.

어쨌던 나는 그럼 너는 너의 울화통을 어떻게 다스리냐? 했지. 그랬더니

이 여자가 참 기발난 발상을 한 거라. 히히히. 글쎄 지 아들 여친의 사진을

냉장고 냉동실에 넣었더니 그렇게 마음이 풀어진다는 거라. 흐흐흐, 뭐?

그게 무슨 소리냐 했더니 지 상상 속에서는 아들 여친이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죽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 진대. 이거 말이 돼? 말이 안 된다구?

이것 보세요. 어떤 상상을 해서 자기의 정신상태가 달라진다면 요새 세상에

사람을 실시간에서 두들겨 패는 것보다 훨씬 더 권장할 일이 아니겠어요?

아니라구? 푸하하.킥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