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사람의 마을 / 김정기

서 량 2023. 1. 3. 18:59

 

사람의 마을

 

                          김정기

 

 

사람의 마을에 다녀가는 건 여름

숱한 넝쿨들이 손을 뻗어

야채 가게에서 잘 익은 과일들은

한 사람의 발자국을 응원하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말이 나지 않는 평생은

끝내 물고 늘어져 세상 끝까지 데리고 간다

 

여름의 한복판에 비가 내리면

더욱 싱싱해지는 강아지풀

벼 포기 사이를 뛰노는

메뚜기들도 사람냄새가 그리워 알을 깐다

 

사람은 나를 끌고 여름의 끝으로 가지만

찌르레기 소리에도 놀라워하는

나는 끝내 여물지 못한다

여름은 지구 속 속을 녹일 줄 알지만

그대 입안에 숨죽인 말 한 마디를

녹이지 못한다

 

여름이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벌써 추위를 타며 마을을 떠나

웅크리고 달력을 본다.

 

© 김정기 201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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