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을
김정기
사람의 마을에 다녀가는 건 여름
숱한 넝쿨들이 손을 뻗어
야채 가게에서 잘 익은 과일들은
한 사람의 발자국을 응원하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말이 나지 않는 평생은
끝내 물고 늘어져 세상 끝까지 데리고 간다
여름의 한복판에 비가 내리면
더욱 싱싱해지는 강아지풀
벼 포기 사이를 뛰노는
메뚜기들도 사람냄새가 그리워 알을 깐다
사람은 나를 끌고 여름의 끝으로 가지만
찌르레기 소리에도 놀라워하는
나는 끝내 여물지 못한다
여름은 지구 속 속을 녹일 줄 알지만
그대 입안에 숨죽인 말 한 마디를
녹이지 못한다
여름이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벌써 추위를 타며 마을을 떠나
웅크리고 달력을 본다.
© 김정기 201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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