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쑥대밭 / 김정기

서 량 2023. 1. 1. 19:29

 

쑥대밭

 

                                                      김정기

 

옛날, 옛날 구성동 입구 쑥밭(蓬田) 마을에는 착하고 부지런한 노인이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나 즐겁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은 나무 하러 산으로 들어갔다가 초립동자를 만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니 초당이 하나 나왔는데, 이 초당에는 월명수좌(月明首座)라는 신선이 살고 있었다. 그 신선은 노인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대접할 것을 만들겠다면서 콩 몇 알을 가지고 산 능선으로 올라갔다. 신선이 심은 콩은 짧은 시간에 싹이 트고 자라 노인이 보는 앞에서 열매가 익었다. 신선은 콩을 따다가 두부와 음식을 만들어 노인을 대접했다. 노인은 풍성한 대접을 받고 정담을 나누느라 집에 돌아가는 일을 잊어버렸다. 얼마쯤 놀다가 집 생각이 나서 신선과 이별하고 돌아와 보니, 노인이 살던 마을은 모습이 변하고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자기가 살던 집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기억을 더듬으면서 노인들이 돌아가신지는 여러 대 이전의 일이고 그 후손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였다. 노인이 살던 집터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쑥이 자라 쑥밭이 되어 쑥대만 우거져 있었다.

 

나는 어디서 놀다가 왔기에 사방이 쑥대밭인가.

 

© 김정기 201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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