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34.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했을 때

서 량 2011. 6. 13. 12:17

 영어에 'dis'로 시작되는 단어가 부지기수로 많다는 사실에 당신은 얼른 동의할 것이다. disappear: 사라지다, disaster: 재난, disappoint: 실망하다, disbelief: 불신, disease: 질병, disorder: 혼란, disagree: 의견을 달리하다, displeasure: 불쾌, dishonest: 부정직한, disrespect: 결례 등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disease' 'dis' 'ease'가 합쳐진 복합어로서  '쉽지 않다' 는 뜻이다.  우리말로도 어르신이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몸이 '편찮으시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몸이 의학적으로 수월하지 못하거나 편치 않은 상태가 곧 병이다.

 

 '아프다'의 옛말은 '알프다'로 우리말 고어사전에 나와있고 '아픔'은 배앓이나 귀앓이의 '앓이'와 말 뿌리가 같다. 지나치게 앎을 추구해서 생기는 병을 도() 닦는 사람들은 '알음앓이'라 한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더니 앎이란 앓음일까, 혹시 아픔일까.

 

 'pain' 13세기 중엽에 'peine'로 표기했고 원래 '아픔'은커녕 발음도 비슷한 'penality: '이라는 뜻이었다. 양키들은 아픔을 양심(良心)의 가책 같은 심리상태가 아니라 외부에서 벌로 가해지는 육체적 고통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정신분석에 의하면 양심이란 동양에서는 수치심의 발로에서 시작됐고 서구적으로는 죄의식 여부에 기준을 두었다 한다. 양키들은 내적인 부끄러움보다 외부적인 징벌만 피할 수 있으면 양심의 고통 없이 '잘 먹고 잘 살'아 왔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뜻의 접두어 'dis'는 전인도 유럽어의 'dvis', ''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절단하거나 나눈다는 라틴어와 불어의 'di' 'de' 와 어원이 같다. 아직도 현대영어의 'divide: 나누다' 또는 'decide: 결정하다'에 그 뉘앙스가 그대로 남아있다. 하나를 등분하면 둘이 되는 법이며 자고로 결정이란 둘 중에 한쪽을 취하고 다른 쪽을 버리는 행위다.

 

 당신은 유일신과 일편단심의 순수성을 추종한다. 대통령 선거 때도 한 입후보자에게만 귀중한 한 표를 던진다. 두 명의 왕초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동물왕국 자연법칙에 입각한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유일신자들에게 '이편단심'이라는 개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지조가 없는 사람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면서 눈살을 찌푸리며 언급하고 두 이성을 사랑하는 드라마 속의 남녀가 양다리를 걸쳤다며 비아냥거린다. '이중인격자'라는 단어도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호칭이다.

 

 'two-timing'은 아놀드 스왈츠네거가 오랜 세월을 자행해 온 것으로 근래에 밝혀진 이중적인 애정행각을 이름한다. 또 있다. 스파이 영화에서처럼 'double-cross'는 배신행위를, 그리고 'two-faced'는 표리부동하다는 슬랭이다. 영어건 우리말이건 ''이라는 뜻이 들어가는 단어는 실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

 

 이쯤 되면 인생에 있어서도 원칙적으로 하나는 좋고 둘은 나쁜 의미라고 선언을 하고 싶어 당신은 안달이 날지도 모르겠다. 차제에 나도 은근히 그러고 싶다는 심정을 밝히는 바이다.

 

 그러나 '사람 인()'자와 '두 이()'자가 합쳐서 이루어진 '어질 인()'자를 잘 들여다 볼지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했을 때 그들의 마음가짐이 아무쪼록 어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는가. 인자불우(仁者不憂), 어진 사람은 근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녀의 사랑 또한 두 사람의 만남에서 싹이 트거늘, 에헴, 우주 삼라만상에 샅샅이 적용되는 음양론의 우여곡절을 당신은 어찌할 것인가.

 

 

© 서 량 2011.06.12

-- 뉴욕중앙일보 2011 6 1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