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31. 왕족, 평민과 어울리다

서 량 2011. 5. 2. 12:14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이 너무 일만 하고 놀지를 않으면 우둔해진다는 뜻이다. 이때 'Jack'는 특정인이 아닌 세상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명칭이다. 우리말로 치면 홍길동이나 철수처럼 친근한 이름이다.

 

 미국 35대 대통령인 'John F. Kennedy'를 애칭으로 'Jack Kennedy'라 부르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John'이라는 싱거운 발음보다 'Jack'의 날카로운 음향이 주는 긴박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은 무엇이든지 다 할 줄 알면서 뛰어난 재주가 없는 사람을 약간 비아냥스럽게 칭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Jack of all trades is better than a master of one' , 이것저것 다 조금씩 아는 사람이 하나만 특별히 잘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말 또한 일리가 있는 것을 어찌하나.

 

 'jack'는 일반명사로도 아주 다양하게 쓰인다. 자동차 타이어를 갈 때 차를 위로 들어올리는 연장을 'jack'라 하고 저절로 철커덕! 펴지는 칼을 'jackknife', 그리고 전화선을 연결하는 장치도 'phone jack'라 일컫는다.

 

 동장군(冬將軍) 'Jack Frost'라 부르고 시쳇말로 대박이 터진다는 표현도 'hit the jackpot'라 한다. 특히 거칠거나 수컷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jackass'는 수탕나귀 혹은 고집불통인 사람을 뜻하고, 'jackdaw'는 갈가마귀, 갑남을녀라는 의미로는 'Jack and Jill'이라 한다. 남녀간에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을 'Every Jack has his Jill'이라 한다.

 

 'before you can say Jack Robinson''눈 깜짝할 사이에' 혹은 '금방'이라는 뜻으로 자주 듣는 관용어다. 그래서 어느 양키가 당신에게 'I will get the job done before you can say Jack Robinson' 하면 어떤 일을 후다닥 해치우겠다는 감칠맛 나는 표현이다.

 

 'Jack'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548년이라 문헌에 나와있다. 'Jack' 'John'이라는 지체 높은 성인(聖人) 이름을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빌려 쓰던 닉네임이었다. 불란서에서는 'Jack' 'Jacques'라 부르고 여성형은 'Jacqueline'이다.

 

 이 남성적인 고유명사 'Jack'가 보통명사로 변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귀추였다. 그 예로 벌목하는 남자, 우리말의 나무꾼을 'lumberjack'라 부른다. 핼로윈 데이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호박등불 또는 도깨비불을 'Jack o'lantern'이라 하고, 뚜껑을 열면 인형이 불시에 튀어나오는 18세기 초에 등장한 희한한 장난감을 'jack-in-the-box'라 하는데 같은 말에서 속임수라는 현대적인 뜻도 생겨났다. 자고로 'jack'가 들어가면 한결같이 서민적이고 소탈한 의미가 되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엊그제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부 케이트가 귀족이 아닌 중산층 평민의 딸이라는 사실이 전 지구촌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시선을 모았다.  듣자니 근 350년 만에 다시 한 번 영국왕실에서 평민과의 결혼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다. 이렇게 왕족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구르면 구를수록 서민화돼 가는 것이다.

 

 유독 왕족의 명분을 유지하는 영국이 다시 한 번 평민 신분을 최상의 사회계급으로 받아드리는 작금의 계기가 대견스럽다. 저 소박한 명칭을 고수하는 영국국기 'Union Jack' 또한 그날따라 청명한 날씨에 왕권의 서민화를 축하라도 하는 듯 훈훈한 봄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 서 량 2011.05.01

-- 뉴욕중앙일보 2011 5 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