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산책 / 임의숙

서 량 2011. 4. 7. 03:00

산책

 

                        임의숙

 

 

이 곳은 지도에도 주소록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마을

쫑이나 메리 같은 애완견은 아니지만

나는 후더*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영화관을 지나 다국적 음식점 식당을 지난다

세탁소에 들려 맡긴 옷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도서관을 지난다

온천 욕을 즐길 수 있는 폭포수 옆

기역자로 꺾어진 계단을 올라서면 왼쪽으로

 

"노크를 하시오"라는 문패가 걸려있다

그가 문패를 내 걸며 준엄한 선전포고를 했을 때

그의 여동생 반감은 마을의 화재거리로 몇 일을 떠 돌았다

마당에는 홈런을 친 야구방망이가 서 있고

글러브가 정원의 함박꽃으로 피어 있는

이 집의 비밀은 침대 밑에 있다

 

오른쪽으로 돌아 나오면 "암호를 대시오"

마을의 통장을 자처하는 그녀는 비밀이 없다

마을의 분신 물 쎈터인 옷장이 있다

사춘기의 기류에 휘 말린 그녀는 매사

"나는 모른다"로 일관 중이다

꿰다 만 유리구슬들이 축구공의 주변에 자유 분방하지만

완성될 목걸이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고민 중이다

 

산책의 내리막 길, 골목 벽면에는 크레파스 그림부터

결혼 포스터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사진전을 관람한다

하루의 시간들이 부스럼으로 떨어진 길

무거웠던 일과의 먼지들이 가벼이 내려 앉는

가정이라는 산책로이다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의 어제를 줍는다.

 

 

* 후더- 청소기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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