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임의숙
스텐레스의 장막을 세우듯이
은빛 허공에 구름의 리듬은 얼음 조각들로 떨어졌다
그가 여러 날 울고 간 자리, 흰 못이 박혔다
허공을 더듬어 굴곡을 조율하는 가지들
걸려드는 빛들의 화음은 한 그루 나무에
수십 개의 못으로 흐트러져 박힌다
어둠을 뚫고 새벽을 지나 햇살이 나오듯이
벽의 통로에서 못은 빛이다
처음 미완의 시간에 주워 든 못들은
단단하지도 크지도 않았다
힘겨운 망치였을까 땀에 배인 손잡이였을까
못은 휘어진 채 튕겨져 날아갔고
시간의 벽면에 메우지 못할 지문을 남겼다
외다리, 뾰족한 못의 끝
느낌표는 삼베 수의를 그 못에 걸었다
물음표는 이별과 만남을 자목련 한 못에 걸었다
오월은 예비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고 바람의 작은 떨림
흰 못은 겹겹이 터져 바닥에 흩어진다
그의 첫 사랑 짧은 이야기처럼
흰 못 자국마다 초록 잎, 구멍이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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