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수필

반짇고리 / 최덕희

서 량 2010. 8. 17. 22:10

새로 산 양말 뒤축이 올이 풀려서 구멍이 났다. 몇 바늘만 꿰메면 신을 것 같아서 실 바늘을 찾으니 언제 누구의 손을 탔는지 있던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바느질을 한 지가 꽤 오래 된 것 같다. 요즘 누가 양말을 꿰메어 신고 옷을 기워 입겠는가? 동네 곳곳마다 세탁소가 있어서 단추 하나 다는 것까지 서비스로 해 주니 가정에서는 실 바늘이 아예 필요없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땐가? 바느질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흰 헝겊에 시침질, 홈질등을 배우며 색실로 뜨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폭소가 터졌다. 한 남자아이가 왼 손바닥에 헝겊을 놓고 바늘로 뜨다가 굳은살 부분을 같이 꿰멘 모양이다. 선생님께서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웃으시니 더 보란 듯이 손을 들고 흔들어대는데 달라 붙은 헝겊이 펄럭대는 걸 보고 다 같이 또 한참을 웃었다.

 중학교 때는 가사시간이 있어서 앞치마도 만들고 손수건에 십자수도 놓았다. 지금도 중고등학교 수업에는 가사시간이 있어서 바느질이나 요리실습을 하고 있겠지?. 그 당시만 해도 결혼을 앞둔 딸을 위해 천을 끊어다 명주솜을 두고 혼수이불을 직접 만드며 신부수업을 시키는 가정도 많았다. 어느 집이나 장롱 속 반짇고리에 색색가지의 실과 여러 종류의 바늘, 가죽으로 만든 골무, 크고 작은 기본형의 단추등이 들어 있었다.

 핸드백에도 조그만 지갑형의 실바늘 케이스를 넣고 다녔었다. 사극에 보면 양가집 규수들이 한복을 곱게 입고 앉아 십자수를 놓고 바느질을 하는 광경이 자주 나온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이다 보면 정신수양이 되어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정숙하게 될 것이다. 전에는 신부감의 덕목으로 솜씨, 맵시, 맘씨를 꼽았다고 한다. 현대에는 여자의 미덕이라는 기준이 달라졌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직업을 가진 여성을 더 선호하는 남자도 있다. 요리나 바느질, 청소는 도우미에게 맡기면 해결 될 일이다. 오죽하면 요리 못하는 건 참아도 못 생긴건 못 참아라는 말이 다 나왔을까? 남녀평등에서 여성상위로 가면서 남녀의 역할이 바뀐 가정도 생겼다. 핵가족제도 때문에 가족의 의미도 달라졌다. 서정슬 시인의 반짇고리라는 시를 읽었다.

 

 한 식구가 모여 사는 집이라오/ 한 식구가 모여 자는 방이라오

   실패, 골무, 바늘꽂이,가위, 단추/ 서로 닮지 않아도 한 식구라오

   서로 도와 가며 사는 한 식구라오.

 

동시처럼 아기자기하고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발가락 시인으로 알려진 서정슬님은 선천성 뇌병변장애인으로 목조차도 자신의 의지대로 가누지 못하여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한벗둥지에서 생활하면서 재활보조기구를 사용하여 시를 쓰고 있다. 서정슬시인의 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고 마포역 5호선 스크린 도어에도 게시되었다. 시집도 6권이나 발간했다. 그의 맑은 시심으로 반짇고리의 한 가족이 한벗둥지의 마음으로 맺어진 동지들이었을까?

함께 살 수 없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었을까?

인터넷상에서 그의 사진을 보았다.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비스듬히 떨어뜨리고 앉아 웃는 모습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지하실에 내려가 바늘통을 찾아다 양말을 기웠다. 다행히 꿰멘 부분이 발바닥 쪽으로 들어가서 티도 안 나고 새양말 하나 거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래 전 부터 올이 풀어진 것을 못 본 척 밀어두었던 이불 깃도 꿰메었다. 바늘 구멍 속으로 오래 전 돌아 가신 외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다가왔다.

외동딸인 엄마가 못 미더워서 항상 우리 곁을 맴돌며 바느질 거리며 떨어 진 집안일을 해주시던 분이다. 살아가면서 서로의 아픈 상처도 보듬고 위로해 주고 마음의 찢기운 곳도 이렇게 말끔히 기워 주며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