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화요일, 9시쯤 되었을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한가하게 아이들이 어지러 놓은 옷가지며 책 등을 치우면서 라디오를 들으니 reporter의 빠르고 불안한 목소리로 WTC에서 연기가 난다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큰 건물이니까 조그만 화재에도 큰일이 난 것 처럼 말하겠지.’ 생각하며 거실과 방을 왔다갔다 하면서 청소를 계속했다.
WTC에서 연기가 난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어~어~ 채널2만 나오네.”해서 청소를 멈추고 TV를 보니
“Oh, My God!" 세상에 이런일이… 한 건물에서 검은 연기가 나고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 한 대가 빠르게 나타나면서 다른 건물을 돌진하면서 건물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큰 폭음과 함께 불꽃 연기 등이 휩싸이며 폭발되며 건물이 붕괴되니 연기가 나던 건물도 서서히 가라 앉으면서 연기 속에 묻혀 버렸다. 붕괴되는 건물을 보면서 그 건물 속에는 아무도 있지 않는 빈 건물 같았고, 영화의 한 장면인 양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 먼지를 뒤집어 쓰고 나오는 사람아닌 석고상 같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 빠르게 그곳을 탈출하는 모습과 그 주위의 폭발로 인한 아수라장한 모습을 보고 그때서야 영화 장면이 아닌 현실임을 느끼고 ‘어찌 세상에 이런일이 있을 수 있을까!’ 공포와 소름이 끼쳤다.
‘두 빌딩을 합치면 220층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는 어찌 된 것일까?’
‘과연 저 엄청난 폭발 속에 살아 남은 사람들은 있는 것일까?’ 그 많은 가족들의 슬픔과 충격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고 심장이 멈추는듯 했고, 눈에 눈물이 고여 한없이 떨어졌다. 우는 것도 아닌데 내 의사와 상관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못 볼 것을 본 충격 때문인 모양이다.
사실이 아닌 사실 앞에 WTC테러 참사를 본 세계인들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경악했고 분노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일을 저지른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일 것이다. 그는 반드시 그의 댓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놀랜 마음을 진정 시키고 11시에 있는 치과의사와 약속을 취소하고 가게를 향해가는데 눈물이 계속 나오고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가게에서 일하는 스페니쉬 Lisa가
“Annie, 아무래도 불안하고 무서워서 집에 가야 겠어요. 라디오에서도 일찍 집에 가는 것이 낫다고 하니까 일찍 문닫고 갑시다.”
“위험하다니 우리 가게가 백악관이라도 되니? 너도 충격을 받아서 불안한 모양이니 가고 싶으면 가려므나.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TV와 라디오 앞에서 앉아 있을 테니까 장사도 안 될거야.” Lisa를 보내 놓고 슬픈 마음과 불안 속에서 TV와 라디오 앞에서 하루를 살았다. TV는 하루종일 WTC 폭발 붕괴되는 장면을 계속 보여주었다. 몇번을 보아도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9월 13일 목요일, 가게문을 열자마자 성조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도매상에 여기저기 전화를 거니 성조기를 가지고 있는 도매상은 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스카프 처럼 머리에 두르는 성조기가 인쇄된 벤데나를 주문했다.
다음날 UPS로 온 벤데나의 가격은 평상시의 가격의 2배였고, 다음날은 4배로 오른 가격이었다. 그래서 도매상에 전화를 거니 그것도 없는데 특별히 생각해서 보내 준 것이라며 고맙게 생각하라는 말투였다.
WTC테러 폭팔 사고로 인한 많은 인명 피해로 충격과 슬픔으로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미국의 평화와 안정과 행운을 빌기 위한 마음으로 쓰기 위한 것을 그냥 주지는 못할 망정 박아지 요금을 붙인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고 마음이 씁쓸하고 우울했다. 계속 성조기를 찾는 사람이 많아 졌다.
성조기를 사기 위해 이가게 저가게 애타게 사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No, We don’t have American flag!” 하는 말을 자꾸하게 되어 미안했다. 어떤 손님은 없다는 데도 2달전 포토리코 퍼레이드때 사다논 포토리코 국기를 꽂아논 바구니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색깔이 비슷하니 혹시 성조기가 있나 하고, 또 몇몇 사람들은 흥분해서 우리 가게에 와서는 조그만 국기를 10불이나 달랜다며 나쁜 욕을 해서 알아보니까 우리 가게에서 서너 가게 위에서 잡화가게를 하는 한국사람이었다. 평상시 가격은 1불인데 10불이라니 너무 비싼 것 같았다. 아무리 도매상에서 비싸게 어렵게 사왔을테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WTC 테러 폭발 사고로 인한 많은 사망자와 많은 부상자들의 소식과 더불어 성조기 소동은 나를 더 우울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9월16일 일요일 12시쯤, 어머님 생신날이었기에 장미꽃과 케익, 카드, 과자 등을 사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저지시티 Montgomery St. 에 있는 어머님 댁을 방문 했다. 내가 결혼 전에 살던 곳인데 베란다에서 WTC가 보이는 허드슨 강가와 가까이 있는 고층 아파트였다. 나는 이곳을 떠난 후에도 친구나 친척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꼭 그곳을 찿았다. WTC, 자유여신상은 물론이고 뉴욕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강변의 큰배와 작은배 ,하늘에는 헬리콥타 등이 정말 한폭의 그림 마냥 아름다웠다. 그것은 보는 친척, 친구들은 무척 좋아 했었고, 특히 사진에서나 보던 WTC를 가까이 직접 보아서 좋아 했었고, 그 웅장함과 높이에 감탄했었다.
결혼 후에도 어머니 댁을 방문하게 되면, 저지 시티를 들어서서 Montgomery St.를 가다보면 WTC가 앞에서 늘 나를 반겨 주었었다.
오늘도 차를 몰고 Montgomery St.에 들어서면서 전처럼 오누이처럼 나란히 서서 나를 반겨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WTC는 보이지 않고 검은 연기 만이 오르며 하늘을 덮고 있었다.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구나.” 나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아버님, 저곳이 세계의 돈을 움직이는 금융기관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건물이 곡선미는 없지만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오누이 처럼 다정스러워 보이지요. 흔히 쌍둥이 빌딩이라고 해요.” 아버님이 미국에 오셨을때도 이곳을 찾으며 했던 말이었다.
오늘은 WTC붕괴 사고로 인해 가까이 파킹이 되지 않아 5블럭쯤 멀리 차를 세워 놓고 WTC가 사라진 자리를 보러 아이들과 함께 걸어갔다. 익스첸지 플레이스가 가까워지자 쾌쾌한 타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WTC가 서 있던 뉴욕시는 아이들이 이를 갈때 앞니 두개가 빠진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이를 갈 때 앞니가 두개가 빠진 귀여운 모습과는 아주 다른 비참하고 형편없는 몰골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도 한없이 슬프고 침통해 보였다.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초에 불을 붙이고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었다.
나는 아직도 피어오르는 연기를 향불로 생각하고 죽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명복을 빌었다.
“부디 좋은 세상에 가서 행복하라고…”
강변 멀리 사라진 WTC잔재를 뒤에 두고 돌아서서 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 몇번을 뒤돌아보고 걸었다.
“엄마, 왜 자꾸 뒤돌아 보는 거야?” 아이들은 이상한 듯 물었다.
“응, 이곳은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매일 Jogging 하던 곳인데 저 자리에 있을 쌍둥이 빌딩을 다시 볼 수 없어서 슬퍼서 그래.”
“엄마, 울지마. 그곳에 더 크고 멋진 건물을 지으면 되잖아.” 정말 아이 다운 생각 이었다.
“그래. 맞아. 저곳에 더 크고 멋있는 건물을 지으면 되겠지. 무서운 테러들도 부시지 못할 튼튼한 건물로 말야.” 붕괴된 WTC의 비참한 모습을 뒤에 두고 걸으면서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지 말길 빌고 또 빌었다. “God Bless
*WTC(국제무역센터)의 테러참사로 비명에간 많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며…
2001년 9월17일 Rutherford에서 전 애자.
**2010년 9월11일 오늘, 그 당시 놀랬던 마음을 생각하며
그 때 쓴 글이 있어 올립니다. 다시금 비명에 간 많은 사람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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