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 구석에서 모과차 병을 발견했다. 수년 전 늘 푸른 농원에서 모과 한 박스를 사다 꿀과 설탕에 재어 큰 병, 작은 병 다 동원해서 밀봉해 놓았었다.
말갛게 즙이 고이기 시작하자 꺼내어 끓여 보았더니 새콤달콤한 모과향이 그대로 살아서 입안 가득 퍼졌다. 가족 모임 친구들 모임마다 자랑하듯 선을 보였고 다 먹은 줄 알았었는데 한 병이 숨어 있었나 보다. 갈색으로 말라진 윗부분을 걷어내고 진액을 따라보니 아깝게도 맛이 변해서 씁쓰름했다. 지난 가을 날씨가 추워지면서 내 몸이 스스로 보호모드로 들어갔다.
여름 내내 얼음 잔뜩 채운 아이스커피를 찾다가 찬바람이 슬슬 목 주위를 건드리자 따뜻한 레몬차, 생강차로 기호가 바뀌기 시작했다. 노란 레몬과 연두빛 라임의 절묘한 색의 조화. 투명한 유리병에 따로따로 한 병씩 담아 식탁 위에 올려 놓고 바라 볼 때 마다 흐뭇해 했다.
며칠이 지나자 라임의 연두빛이 점차 절은 오이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을 때의 실망감이란…
색으로 치면 또 석류차가 압권이다. 톡 터질 듯한 석류알을 알알이 따서 예쁜 병에 담고 아카시아 꿀에 재어 열흘쯤 지나자 빨간 석류액이 황홀할 정도로 눈부셨다.
혼자 마시기 아까워서 작은 병에 덜어 담고 코트 주머니에 와인잔 두 개를 넣어 근처에 있는 친구네 가게로 갔다. 친구는 와인잔에 반쯤 따른 석류즙을 알콜이 들어 간 석류주로 생각했었나 보다. “ 완전 설탕물이네!” 맥 빠진 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100% 석류쥬스 아닌가?
동양제일의 미녀 양귀비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석류는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광고와 함께 여성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남성에게도 물론 좋다.
얼굴피부의 탄력 유지와 노화방지, 스트레스 해소, 고혈압 예방, 기억력 상승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나 무엇이든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 차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쑥차이다. 이른 봄철에 막 올라오는 여린 잎을 따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그늘에 말려 놓았다가 우려 낸 후 차잎은 건져서 마사지용으로 쓸 수 있다.
복 날 삼계탕에 넣고 남은 수삼 몇 뿌리에 대추와 배를 넣고 끓이니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것이 쌍화탕 맛이 났다.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인삼은 사람의 오장을 보호하며 신경세포 촉진, 항스트레스 효능에 간기능 개선, 당뇨병에 효과, 최신 발표에 의하면 갱년기 중상까지 완화시킨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인삼의 효능은 널리 알려져 왔지만 양[陽]체질 즉, 위를 비롯한 속이 뜨거운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허브차와 국화, 민들레, 진달래, 아카시아 등의 꽃차도 시각, 미각, 후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아직은 꽃샘추위라서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 들어와 따뜻한 찻잔의 감촉이 그립지만 더위를 대비한 차로는 뭐니뭐니해도 영양만족 식사대용인 미숫가루와 콩국이다. 찹쌀 누룽지를 잘 말려서 각종 곡식류와 씨앗 견과류, 야채 말린 것을 빻아 만든 미숫가루와 검은콩을 살짝 삶아서 잣을 한 줌 같이 넣고 갈은 콩국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수시로 마시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 냉차로 내가 애용하는 결명자는 시력에 좋으며 알맹이 그대로 끓여서 식히기만 하면 보리차처럼 마실 수 있다. 생수에 레몬을 썰어 넣어두면 상큼한 레모네이드가 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차들은 종류도 많고 물만 끓이면 간단히 마실 수 있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영양과 향을 그대로 살린 우리 차를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손님을 집에 초대했을 때 주부의 센스를 발휘해서 보너스점수를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살짝 귀띔해 드리고 싶다.
'김정기의 글동네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과향기 / 전애자 (0) | 2012.06.14 |
---|---|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 최덕희 (0) | 2011.05.19 |
이병률 시인과의 만남 / 최덕희 (0) | 2011.02.28 |
WTC의 참사를 보고 / 전애자 (0) | 2010.09.11 |
반짇고리 / 최덕희 (0) | 2010.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