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멀은 상주이다
임의숙
길 위에 스컹크 한 마리 향을 피운다
주유소 앞, 담배광고판의 캐멀은
검은 예복을 갖추어 입은 상주였던 것
우리는 우리가 문상객인 줄도 모르고
허기진 자동차의 배가 둥글게 불러오는 동안
커피를 사고 담배를 사고 아이스크림을 산다
금빛 카드로 현금으로 부조를 했던 것이다
죽음도 흔해지면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흰 이 드러내 환하게 웃는 캐멀
오래 전 터키 혈통의 족속이였으나
몇 대를 지나오면서 혼혈이 되었다는 것을
그의 생김새나 옷차림에서 볼 수 있다
피라미드와 세 구루의 야자수나무 그리고 바람의 궁전 메히라트*
지상의 모든 번뇌를 사막의 한 색채로 표현해주던
그의 선조를 기억한다
문 없는 주유소의 문턱을 넘으려다 만난 고인
한 몸에서 갈라져 살아야 했던 두 개의
검은 고독감처럼 지독한 향을 피운다
시간의 한 조각으로 살다가 떠나는 길 위의 여정
그들의 발소리를 바람에서 듣는다
우리는 아무도 스컹크의 죽음에 대해 묻지 않는다
흰 넥타이 길게 매어 달고 사막의 붉은 그림자 깔고 누웠다
대대로 이들의 상주는 낙타이였으므로
캐멀은 담배연기로 또 한 번의 제를 올리나.
*메히라트: 여러 개의 둥근 지붕 모양으로 사막에 높게 세워진 건물, 사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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