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낮게만 흐르다가 / 송진

서 량 2011. 3. 1. 23:32

 

낮게만 흐르다가

 

                          송 진

 

 

치첸 잇사*가 가까워지자

중년 남자 하나가 버스에 오른다

새카맣게 그을린 네모난 얼굴에 깊은 눈

수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마야 달력을 치켜든다.

초점 없는 시선은 관중을 엇비낀 채 

알 수 없는 말들을 계속 흘려낸다.

영혼이 떠난 빈 집에서 울려퍼지는 공허한 메아리.

 

유적지 입구에서부터 모기떼처럼 달려드는

행상들의 아우성. 원 달라! 원 달라!

아직도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피라밋이

언젠가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라도 할까봐

한사코 허물어트리며 정글 더 깊숙히 밀어 넣는다.

폐선에서 끊임 없이 흘러나오는 기름띠.

뒤범벅이 되어 헐떡거리는 물고기 떼.

 

유령의 집 같은 노파를 골라

일용할 산소 한 봉지를 건넨다.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꿈 속에서

터널 같은 불청객의 누런 이빨 사이로

수 놓인 흰 손수건 하나를 제물로 받으며

 

 

*Chichen Itza –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내부에 위치한 고대 마야인의 유적지가 있는 곳.

 그곳에 있는 피라밋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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