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만 흐르다가
송 진
치첸 잇사*가 가까워지자
중년 남자 하나가 버스에 오른다
새카맣게 그을린 네모난 얼굴에 깊은 눈
수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마야 달력을 치켜든다.
초점 없는 시선은 관중을 엇비낀 채
알 수 없는 말들을 계속 흘려낸다.
영혼이 떠난 빈 집에서 울려퍼지는 공허한 메아리.
유적지 입구에서부터 모기떼처럼 달려드는
행상들의 아우성. 원 달라! 원 달라!
아직도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피라밋이
언젠가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라도 할까봐
한사코 허물어트리며 정글 더 깊숙히 밀어 넣는다.
폐선에서 끊임 없이 흘러나오는 기름띠.
뒤범벅이 되어 헐떡거리는 물고기 떼.
유령의 집 같은 노파를 골라
일용할 산소 한 봉지를 건넨다.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꿈 속에서
터널 같은 불청객의 누런 이빨 사이로
수 놓인 흰 손수건 하나를 제물로 받으며
*Chichen Itza –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내부에 위치한 고대 마야인의 유적지가 있는 곳.
그곳에 있는 피라밋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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