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詩

|詩| 형제목공소

서 량 2011. 4. 6. 11:04

 

로터리 좀 지난 골목길 입구의 형제목공소

흰 바탕에 검정색으로 쓴 궁서체 간판

아무도 손재주 좋은 형제를 만나본 적이 없다던데

형이 절름발이라고 소문이 난 형제에게

오래된 식탁처럼 휘청거리는 홀어머니가 있다던데 

홀어머니는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고 웃지도 않으면서

형제는 우애가 있어야 한다는 가훈(家訓)을 우겼다네

로터리 좀 지난 골목길 입구에서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의 자전거포

바람 새는 자전거 타이어 고치러 오는 사람 말고

간판도 없고 손님도 없는 김씨네

늘 어두컴컴한 가게에서 혼자 담배 피는 김씨였는데

아버지가 형제목공소에

나와 내 동생이 사이 좋게 마주앉아 공부하도록

길쭉한 책상 하나와 눈높이 훤칠한 의자 둘을 주문하셨다네

좁은 방에 넙죽 들어앉은 새 책상 나무 냄새

동생과 마주보고 억지로 공부를 하려니

전혀 정신집중이 되지 않는 내 알뜰한 사춘기였는데

형제목공소 형제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내 사춘기

 

 

© 서 량 2011.02.24

-- 월간시집 <우리詩> 2011년 4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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