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은 석양(夕陽)에 눈 아픈 양파 껍질처럼 한 겹 밑으로 다른 겹이 있고 그 밑에 또 다른 바탕색이 있다. 석양의 배후를 함부로 쉽사리 파악하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끝내 눈물겨운 양파의 마지막 알갱이에 당도할 것이고 그러면 석양의 비밀이 어둠 속 허수아비로 둔갑 할까 봐 겁이 난단 말이야. 프라이팬에 뜨겁게 달구어진 은행열매의 시큰둥한 맛도 우리 식단에 어떤 역할을 하기 마련입니다. 손아귀에 예쁜 구슬을 만지작거리듯 당신이 톡 쏘는 양파 맛을 입 안에 굴리고 있네. 사람들이 양파를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유전적으로 그리 태어났다는 생각이 맞기는 맞나요? 석양을 배경으로 한 채 도력(道力) 높은 중이 부처는 부처고, 양파는 양파다! 하고 일갈(一喝) 합니다. 경건한 호기심으로 석양과 양파의 정의를 권위 있게 내려보세요. 그리고 잠시 후 시커먼 암흑 속에서 누군가 귀에 익은 목소리로 그렇다! 하며 기탄 없이 동조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려 보시든지.
© 서 량 2011.02.10
-- 월간시집 <우리詩> 2011년 4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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