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담는다
임의숙
어스름이 없어도 차를 마시는 시간은
파자마를 입어 편안하다
흰 밧줄을 타고 티백(tea bag)은 빈 연못속
사각의 달로 내려 앉는다
햇살이 달군 뜨거운 주전자
구름의 얼굴과 바람의 높 낮이로 말려낸
기억은 방울방울 피어 오른다
찻잔의 수심처럼 손가락으로 짚어보면 닿는
손바닥에 덖이던 시간들
잔잔한 물속에 초록으로 풀어진다
연못속 달이 만월로 떠 올랐다
커피를 마시는 아버지, 한 모금씩
초록을 듣는다
백마강을 헤엄쳐 건너 다녔다
논두렁 씨름판 왕치 아저씨를 냅다들어 꽂았을 때
팔이 부르는 만세는
긴 시간 갇혀있던 검은 초록이
입가에 웃음으로 풀어지고 있었다
바닷가에 사는 그녀의 주전자
볕 없이 안개속에서 파도와 파도의 소리까지 끓여
초록을 담아 낸다
소금끼 있는 갈매기의 울음을 닮은 나는
파래무침 비릿한 향이 풀어지는 소박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안고 나를 헹궈 마셨다
연못속 달은 가고 없는지
몇 방울의 그림자만 남아 있다.
'김정기의 글동네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노키오 / 임의숙 (0) | 2011.02.05 |
---|---|
불안이란 허깨비가 / 윤영지 (0) | 2011.02.05 |
길눈의 마음 / 전 애 자 (0) | 2011.02.01 |
다시 눈 내리고 / 황재광 (0) | 2011.01.28 |
눈물의 시트론 / 조성자 (0) | 2011.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