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초록을 담는다 / 임의숙

서 량 2011. 2. 2. 09:19

 

초록을 담는다

 

                               임의숙 

 

어스름이 없어도 차를 마시는 시간은

파자마를 입어 편안하다

밧줄을 타고 티백(tea bag)은 연못속

사각의 달로 내려 앉는다

햇살이 달군 뜨거운 주전자

구름의 얼굴과 바람의 낮이로 말려낸

기억은 방울방울 피어 오른다

찻잔의 수심처럼 손가락으로 짚어보면 닿는

손바닥에 덖이던 시간들

잔잔한 물속에 초록으로 풀어진다

연못속 달이 만월로 올랐다

커피를 마시는 아버지, 모금씩

초록을 듣는다

백마강을 헤엄쳐 건너 다녔다

논두렁 씨름판 왕치 아저씨를 냅다들어 꽂았을

팔이 부르는 만세는

시간 갇혀있던 검은 초록이

입가에 웃음으로 풀어지고 있었다

바닷가에 사는 그녀의 주전자

없이 안개속에서 파도와 파도의 소리까지 끓여

초록을 담아 낸다

소금끼 있는 갈매기의 울음을 닮은 나는

파래무침 비릿한 향이 풀어지는 소박한 찻잔을

손으로 감싸안고 나를 헹궈 마셨다

연못속 달은 가고 없는지

방울의 그림자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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