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임의숙
남자의 대패질이 멈추었다
털어내는 톱밥의 먼지들이 어스름 속으로 회전하자
도심지는 희뿌연 한 수증기를 쏘아 올린다
한 마리 거대한 고래 같았다 아니다
고래를 통째로 삼킨 도시였다
횃불을 밝혀든 간판들 사이사이 밀리고
밀리는 삶의 환부들,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어도
부서지고 깨지는 문의 비명이 뚫린다
나무의 살을 다듬고 결을 맞추어 대는
남자의 이마 위로 겹겹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다
세 들어 사는 방 (새 들어 사는 방), 투명한 꿈
목각인형처럼 만지면 만질수록 반질거리는
여자의 습관이 싫으면서도 좋은 남자
발 품팔아 모아 들인 경품들과 증정 품들이
당나귀의 등짐처럼 단 칸 방에 부풀어 오른다
여자의 날개가 퍼덕일 때마다 자라나는 꿈은
풀려 나가는 두루마리 화장지만큼이나 길었고
쌓아 올린 빨랫비누만큼이나 층층이 높아져 갔다
말 그대로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품, 환한 꿈
깊이를 잴 수 없는 새들의 안쪽 날개
여자의 겨드랑이에 어깨를 받쳐주고서야 남자는 알았다
바람을 향해 수만 번 날아 올랐을
여자의 날개는 헐거웠다
사거리 화장품 가게에서 얻은 샘플들이
후진하던 택시의 뒷바퀴에 물렸을 때
여자의 한쪽 다리가 부러져 내렸다
목각인형처럼 만지면 만질수록 반질거리는
통장의 숫자만큼이나 오래 머물던 남자의 눈길이
겉 표지를 열고 병원문을 나오던 날
깁스한 여자의 한쪽 다리에 남자는 목발이 되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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