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흐르는 혈압 외 1편
한혜영
아우의 혈압은 나지막하게 흐른다네
사뭇 점잖은 구름처럼
갠지스 강보다 낮고 겸손하게 흐른다네
어떤 생도 한 번의 뒤척임은 있다하던데,
낡은 혈관 속으로 생쥐 같은 분노라도
한 마리 투입시켜보라는 누나의 말에
아우는 팥죽처럼 어두운 얼굴을 천천히 흔들었네
일파만파로 물결을 건드리는 것보다
갈대숲이 뽀얀 하구로
조용히 떠밀리는 편이 순리라 하네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는 아우의 가슴
한때의 늑골은 천둥소리로 가득했을 것이네
이과수폭포처럼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청춘을 품고 핏줄처럼 지루한 꿈도 꾸었으리
남들은 시퍼런 시간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뿔들을 키울 때에
눈빛 순한 아우는 한 박자가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제 생을 몰고서 가고 있네
밥 먹는 일
귀국해서 삼 주 내내 화두가 밥이었다
밥 아니고는
회포로 통하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듯
밥그릇에서 밥그릇으로 하루해가 건너갔다
밥이 아닌 약속 따위는 무의미한 것이어서
오로지 밥, 밥이라야지 그리움과 통했다
김 오르는 밥상만 가운데 버티고 있으면
어떠한 폭설도 조폭도 이길 자신 있다는 듯,
만날 때마다 조금 더 깊어져 있는
골짜기와 마주한다는 것은
슬픔인 동시에 안심이기도 한 것이어서
우리는 오물거리는 골짜기를 보며
웃었고, 밥을 먹었다
피자나 햄버거보다 밥의 힘을 믿는
아직까지도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그리움은 밥집에서 완성되었고
밥집 문을 나서는 순간 그 다음 밥을 걱정했다
『寓話, 혹은 羽化』 빈터문학동인회 동인지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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