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커크의 애정행각

서 량 2010. 2. 20. 08:43

 피부색이 삶은 감자 같은 커크는 올해 47살로 멀리서 보면 왕년의 미남 배우 록 허드슨같이 잘생긴 백인남자. 지난 10년 동안을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나를 찾아온 놈인데 진단명이 좀 애매해. 그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왜냐 하면 진단명이 뚜렷하지 않다는 건 정신병이라기보다 성격적이거나 환경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됐다는 것을 뜻하는 거 거든. 서두가 거창하지? <테스: Tess>의 저자, 저보다 39살 어린 비서와 재혼한 토마스 하디(1840-1928)의 명언처럼 '성격이 운명을 지배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지금.

 

 어쨋거나 커그는 왕년에 초등학교의 보조교사로 일을 했었는데 어느 날 어떤 저능아 보조교육을 하다가 너무 울화통이 터져서 애 머리를 주먹으로 크게 쥐어 박은 후 그 다음 날로 해고를 당했다는군.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 미국은 학생의 천국, 한국은 선생의 천국이라고 했어, 안했어? 한국에서는 불량배 뿐만 아니라 저능아도 때려서 다스리잖아. 최소한 내 시절에는 그랬어. 어쨋든 커크는 내가 내린 애매한 진단명 때문에 정신장애인 취급을 받고 백수가 돼서 그후 지금껏 정부보조금으로 그럭저럭 살고 있는 실정이야.

 

 그놈은 35살에 여차여차해서 필리핀 여자하고 결혼을 했다가 5년 후에 이혼을 했대. 이혼 이유?  당신이 믿지 못하겠지만, 커크가 뭘 하자하면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싫다고 해서라나. 영화를 보러 가자, 하면 영화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며 싫다 하고, 산책 나가자, 하면 다리가 아파서 싫다 하고, 섹스를 하자는 수작을 걸면 머리가 아프다며 싫다 했다나 어쨌다나.

 

 그러다가 2년 전쯤에 네일사롱을 하는 눈매 요염한 중국여자가 저 한테 관심을 보였대. 동양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놈이 또 금방 후끈 달아올랐지. 그래서 한 번 자기 집 사방팔방에 촛불을 켜 놓고 저녁식사 초대를 했더니 그녀는 집을 한 번 쓱 돌아 보고 자기는 커크 집이 너무 작아서 싫다면서 중국 악센트 팍팍 들어가는 영어로 앞으로는 만나지 말자고 했다나 어쨌다나. 그 중국여자는 계산에 뛰어난 물질주의자였는데 커크가 낭만주의자로 착각을 한 거지. 당신도 한 번 솔직히 생각을 해 봐. 극단적인 예를 제외하고는 낭만이 물질을 우선해야 남녀관계가 폼나는 거 아니야? 사랑이 생존의 도구라구? 사랑이 돈이야?

 

 근데 석 달 전에 밑도 끝도 없이 고등학교 시절 걸프렌드였던 린다한테서 전화가 왔대. 자기는 조지아 주에서 살고 있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커크의 전화번호를 알았다는 거라. 결혼한지 10년 만에 지 남편이 회사 비서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할려고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했다는 거 있지. 그래서 커크는 어느 조지아의 소도시에 사는 린다의 초대를 받고 그 집에 가서 린다와 새벽 네시에 몰래 섹스를 하다가 린다 남편에게 들켰대. 당신한테 미안하다. 얘기가 너무 조잡해서 말이지.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걸 어떡해. 그래서 커크는 심한 모욕을 당하고 벌거벗은 채 가볍게 그 잘생긴 얼굴을 몇 대 얻어맞고 바로 다음날 자기 집으로 돌아왔지. 그 네일사롱 하는 중국여자가 마음에 안 들어 했던 조그만 자기 집으로. 킥킥.

 

 엊그제 진정제를 처방 받기 위해 내게 온 커크 왈, 며칠 전에 린다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달 후가 자기 생일인데 그날 자기 집에 오겠느냐고 물었더니 린다가 기꺼이 승락했다는 거야. 내 추측에 린다는 그 눈매 요염한 중국여자처럼 집이 작다고 투정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근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치사스러운 중국여자도, 린다도, 비서와 배가 맞은 린다 남편도, 그리고 록 허드슨처럼 잘생긴 커크도 너무너무 다 불쌍하지 않아? 물론 당신이 걔네들에게 동정심을 품지 않는다 해서 걔네들의 앞길이 크게 달라질 수는 않겠지만.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어때. 서슬이 시퍼런 시어머니가 판을 치는 한국 티브이 연속 드라마보다 좀더 흥미진진하지 않아? 우하하.

  

© 서 량 2010.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