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나라
최양숙
인간의 몸으로 살 수 없는 이들이
영하의 세상에서 황제가 된다
들어갈 때는 날아들어갔지만
그들의 나라에서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날개
남극에 내리는 눈은
포근함을 유리병에 가둔 채
길들여지지 않는 바람을 바르고
얼음을 켜켜로 쌓아
산도 들도 백색으로 빚고
바다 같은 얼음도
깊은 백색을 빚어낸다
뒤덮인 눈 속에 입 벌린 얼음의 골짜기
물 밑에서 노리는 바다표범을 피해서
수백 수천의 펭귄이 줄지어 행진한 곳은
남극의 가장 추운 내륙 오모크*
태양은 냉동실 전구같은 창백한 빛으로
영하 60도의 바람을 짓이긴다
검고 매끈한 등에
황제의 연미복이 빛날 때
그들의 사랑은 유일한 유채색이다
가슴 부위 연노랑으로 짝을 부르며
귀 부위 밝은 노랑은 짝의 노래를 구별한다
황제의 발등에 감춘 하나의 펭귄알을
깨트리지 않기위해 목숨을 걸 때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극지의 가장 따듯한 품에서
황제가 태어난다.
*남극에 군집하여 사는 황제펭귄이 짝짓기하고 알을 부화하기 위하여
모이는 남극의 내륙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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