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송 진
알곡이 잉태되어 자라는 동안
아무도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진흙 속에 묻힌 발이 시리고 저려도
알곡들이 제 모습대로 자리 잡고 여물기 시작할 때
그는 온 종일 날짐승들과 싸우느라 초주검 꼴이 되었다
뙤약볕에 삭고 비바람에 찢긴 남루를 걸친 채
풍성한 수확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빈 들에
각설이 벙거지 삐딱하게 걸친, 십자가 하나
이제는 앙상해진 어깨마저
날짐승들의 쉼터로 내어준, 크로스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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