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허 수 아 비 / 송 진

서 량 2010. 10. 20. 04:07

 

허수아비

 

                             송 진

 

알곡이 잉태되어 자라는 동안

아무도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진흙 속에 묻힌 발이 시리고 저려도

 

알곡들이 제 모습대로 자리 잡고 여물기 시작할 때

그는 온 종일 날짐승들과 싸우느라 초주검 꼴이 되었다

뙤약볕에 삭고 비바람에 찢긴 남루를 걸친 채

 

풍성한 수확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빈 들에

각설이 벙거지 삐딱하게 걸친, 십자가 하나

 

이제는 앙상해진 어깨마저

날짐승들의 쉼터로 내어준, 크로스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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