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19. 삼천포로 빠지다

서 량 2010. 11. 15. 02:57

 1773 12 16일에 보스턴의 급진주의자들이 영국의 세금정책에 반대하기 위하여 보스턴에 입항한 영국상선에 탑승하여 차()를 뭉터기로 바다에 던지는 난동을 부렸다. 그 사건을 이름하여 'Boston tea party'라 했는데 근래에는 'Boston'을 빼고 그냥 'tea party'라 한다. 최근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을 형편없이 압도한 것도 급진적 보수세력인 'tea party group'의 공헌이 컸다는 보도다. 'tea party'는 보스턴에 관련된 미국 역사를 모르면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다.

 

 우리말에 누가 어디를 간 후 다시 나타나지 않은 경우에 '함흥차사'라 한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이 쿠데타를 두 번이나 일으켜 이복 형제들이며 피 비린내 나는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이고 3대 왕인 태종으로 등극을 한 것이 서기 1400. 그때 이미 이성계는 이방원에 대한 못마땅한 심정에서 자기 고향인 함흥으로 떠난다.

 

 이방원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함흥으로 차사를 몇 번을 보냈다. 그러나 부전자전이라, 성질 고약한 이성계가 무고한 차사들을 잡아 가두거나 일설에 의하면 죽이고 했으니 이방원의 스페셜 에이전트들은 이메일도 없던 그 시절에 감감 무소식이다. 이것이 바로 '함흥차사'의 내력이다.

 

 '안성맞춤'도 경기도 안성에 놋그릇이나 놋요강 따위를 주문하면 그 품질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아주 좋은 것으로 소문이 났던 역사에서 비롯된다. 지금이라도 안성에 가면 '안성맞춤 박물관'에서 그 증거를 목격할 수 있다.

 

 'I will be there in a New York minute'는 금방, 쏜살같이 가겠다는 뜻이다. 뉴요커들의 성급함을 묘사한 슬랭이다.                                     

 

 반면에 미국의 서부를 대표하는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약자인 L. A.에서 유래한 'lala land'라는 속어가 있다. 노래 소리를 방불케 하는 이 말은 엘 에이는 물론 할리우드나 60년대에 히피족을 탄생시킨 남가주처럼 비현실적인 '꿈나라'를 뜻한다.

 

 도시나 지역뿐만 아니라 인종을 들먹이는 슬랭도 많다. 'Chinese fire drill (중국인의 소방훈련)'은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떠들썩한 광경을 뜻한다. 백인들이 미국을 점령할 당시에 원주민 인디언에게 땅을 빌려달라 해 놓고 나중에 그들이 땅을 돌려달라 하면 빌린 것이 아니라 선물 받은 것이라고 오리발을 내민 습관에서 'Indian giver'는 선물을 되돌려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아주 묘한 뜻이 돼 버렸다.    

 

 서울에서 진해를 갈 때 삼량진에서 기차를 갈아타지 못하고 삼천포로 빠지면 난처하다. 그래서 우리는 목적지에 가지 않고 딴 길로 새는 경우를 삼천포로 빠진다 한다.

 

 흥선 대원군(1820~1898)'조선8도 인물평'을 기억하는가. 그는 함경도를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에서 싸우는 개라 하고, 평안도를 맹호출림(猛虎出林), 숲에서 나오는 사나운 호랑이라 하고, 황해도를 석전경우(石田耕牛), 자갈밭을 가는 소에 비유했다.

 

 그는 또 강원도는 암하고불(岩下古佛), 바위 밑의 오래된 돌부처,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 거울 속의 미인,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 바람 앞에 나부끼는 세버들, 그리고 경상도는 태산교악(泰山喬嶽), 험준한 산비탈과 괴암절벽에 빗대었다.

 

 이쯤 해서, 에헴, 대원군에 의하면 북한사람들은 개나 호랑이나 소처럼 동물적인 반면에 남한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인간적 면목이 특출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나 또한 삼천포로 빠질까 한다.

 

 

© 서 량 2010.11.14

-- 뉴욕중앙일보 2010년 11월 1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