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18. 소녀와 숙녀

서 량 2010. 11. 1. 04:32

 바람 부는 가을날 맨해튼 중부쯤 어느 북적거리는 레스트랑 같은 데서 화장실을 가노라면 배설행위의 남녀유별이라는 도시적 질서와 시책 때문에 자신의 성()을 명심하며 도어를 확인해야 한다. 공자왈,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치마와 바지를 단정하게 입은 만화 같은 아이콘을 힐끗 체크하지만 굳이 'Ladies' 혹은 'Gentlemen'이라는 텍스트가 지성인들의 분별력을 도와준다. 숙녀나 신사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배설 장소를 선택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꼭 신사와 숙녀라야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은 인류 인권위원회에 회부돼야 한다. 근래에 위선을 싫어하는 풍조에서 'Women' 'Men'이라고 쓴 간판도 허다하지만.

 

 '숙녀' '신사'를 사전에서 찾아 보았다. 최소한 밖에서 남의 화장실을 사용하는 동안만큼은 남녀를 불문하고 '교양과 예의와 품격이 있는' 여자 또는 남자라야 한다는 자각심이 일어난다. 이것은 여자는 정숙하지 못하고 남자는 교양이 없었다는 인류의 역사를 또한 암시하고 있다.

 

 'lady'는 고대영어에서 주인(lord)의 아내(ladi)라는 뜻과 '빵을 만드는 사람(hlaf)'이라는 뜻이 혼합된 말이었다. 발음하기도 힘이 드는 'hlaf'는 현대영어의 'loaf(빵 덩어리)'에 그 뜻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고대의 양키 가정에서 아내는 밀가루를 반죽하고 주물럭거리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자고로 우리의 먹거리는 여자들이 주관해 왔다. 어원학적 차원에서 보자니까 맨해튼 레스트랑 화장실에서 요조숙녀들이 빵을 만들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요조숙녀(窈窕淑女)라는 말을 쓰거나 들으면 옛날 유행가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의 가사가 연상된다. '요리조리''이리저리'라는 말의 형태를 약간 바꾸어 본래의 뜻보다 작고 귀엽게 들리도록 하는 언어적 수법인 지소형(指小形)이다. 요조숙녀? 요리조리?

 

 'lady'가 보편적인 의미에서 여자의 존칭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그 즈음해서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내들은 더 이상 손에 밀가루를 묻히지 않아도 좋았던 것이다.

 

 인류 역사상 남자를 먹여 살리는 노력은 사실상 여자들이 해 왔다. 동물왕국의 실태란 당신이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여러 번 보았듯이 사슴이나 얼룩말을 사냥하는 사자들은 암사자들이지 결코 하루의 대부분을 갈기를 휘날리며 빈둥거리는 숫사자들이 아니다. 숫놈들의 소명은 외부의 침략을 막는 소위 국방부에 해당할지언정 어린 것들의 끼니를 주관하는 내무부 장관은 뼈빠지게 일하는 암놈들의 몫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든 동물왕국 생명의 연속은 수놈도 수놈이지만 암놈의 능력과 여건에 딸려있다는 내막에 당신은 깊은 감명을 받을지어다.

 

 우리의 가요계를 주름잡는 보컬그룹에 10대로 구성된 <소녀시대>가 있다. 소녀(少女)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계집아이'라 사전은 풀이한다. 처녀(處女) '결혼하지 아니한 성년 여자'를 일컫는 반면에 숙녀(淑女)는 어쩐지 남자의 실체를 경험한 여자지만 행동이 맑고 조신한 여자일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 소녀가 처녀가 되고 처녀가 숙녀가 된 그 다음에는 어쩔 것인가. 중년에 접어들었다 해서 중녀(中女)라 할 것인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그런 말은 없다. 우리에게는 중년여자라는 사자성어 비슷하게 거추장스러운 말이 있을 뿐.

 

 그리고 숙녀는 종국에 노파(老婆)로 변신한다. 그 즈음해서 그녀의 호칭에는 더 이상 요염하고 발랄한 계집 여()자가 단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노파는 서럽다. 을씨년스러운 내 서재 밖, 저 낙엽 지고 헐 벗은 늦가을 떡갈나무처럼.

 

 

© 서 량 2010.10.31

-- 뉴욕중앙일보 2010 11 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