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09. 만만한 축구공

서 량 2010. 6. 21. 21:01

 명품(名品)을 밝히는 당신이라면 생선 중에 아마도 고등어를 제일로 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이나 중등이 아닌 고등어, 소위 높을 고()자가 아닌가 말이다. 높은 등급의 물고기?, 아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전을 이리저리 찾아 보니 고등어(高等漁)라는 한자어는 없고 청어(靑魚)과에 속한다고 나와 있어서 응, 그래? 하는 무심한 깨달음이 있었을 뿐, 어쩐지 '등 푸른 고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생선 등허리가 푸르면 품질이 좋다는 얘기가 된다는 말이려니. 생선이건 사람이건 명품으로 태어나야 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고등어를 영어로 'mackerel'이라 하는데 13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고대 불어의 'maquerel'과 어원을 같이하는 말로서 본뜻이 '뚜쟁이'라는 의미였다. 여름철에 고등어 떼가 해안으로 몰려들어 산란(産卵)을 하는 장면을 유심히 본 고대 불란서인들이 쓰기 시작한 말이다. '아이구!' 혹은 '저걸 어째!'하는 간투사로서 'Holy mackerel!: 신성한 고등어여!' 하는 표현이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 1899년이다. 이렇게 고등어는 신성한 섹스와 연관된 생물로 인류역사에 등장했다.

 

 생선(生鮮)은 한자어다. 말리지나 절이지 않은 물에서 잡아낸 그대로의 물고기라 옥편은 풀이하고 있다. 아침이 곱다 해서 조선(朝鮮)이라 할 때 고울 선()은 참으로 아름다운 뜻을 지닌다. 곱다는 뜻 외에도 선명하다, 빛나다, 깨끗하다, 싱싱하다, 신선하다 등등의 의미가 있다.

 

 영어의 'fish' 'y'를 붙이면 생선의 형용사가 된다. 얼른 듣기에 '생선스럽다'는 알쏭달쏭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fishy'는 수상한 냄새가 난다는 뜻으로서 곱고 신선하기는커녕 생선 비린내의 역겨움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우리는 생선을 좋아하고 양키들은 생선을 안 좋아하는가 보다.

 정겹고 진솔한 우리나라 남도 말에 "만만한 게 홍어 X"이라는 말이 있다. 홍어의 생식기에 대하여 가장 자세하게 기록을 한 사람은 자산어보(玆山漁譜)를 출간한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었다. 그는 전라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어류학서를 1814년에 발표한 한국최초의 생물학자로 우리에게 군림한다.

 붉을 홍()이 아닌 넓을 홍()의 홍어(洪魚)는 그 수놈의 생식기가 두 개인 것으로 어부들간에 익히 알려져 있다. 대개 동물세계에서 그렇듯이 수놈은 고기가 질기고 뻣뻣해서 값이 싸기 때문에 전라도 어부들은 홍어의 만만한 생식기를 칼로 쳐 거세를 시켜 수놈을 암컷이라 속임으로써 상인다운 속셈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다.

 모든 동물들의 특징이 그러하듯 머리와 꼬리의 제한된 운동성을 제외하고는 팔과 다리, 소위 사지(四肢)말고 더 속도감이 있는 기관이 어디에 또 있을까. 사지 중에서도 뜀박질을 하는 도구는 손 보다는 발이다. 생명의 가동성을 입증하는 데는 역시 발이 움직여야 한다. 80세에 부처가 열반에 든 소식을 듣고 뒤늦게 도착한 가섭이 관 옆에서 비통해 하자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불쑥 내밀어 생사불이(生死不二)의 실상을 보이지 않았던가.

 

 월드 컵에 출현하는 모든 근력 좋은 젊은이들의 발과 다리를 당신은 근래에 유심히 보았을 것이다. 그들의 존재이유는 사력을 다하여 뛰어가면서 공을 발로 잡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길질하는 데 있다.

 

 축구공은 끊임없이 뭇 사람들 발길질에 이리 맞고 저리 맞는다. 발 끝으로 차고, 복숭아 뼈  안쪽으로 차고, 발등으로 차고, 무릎으로 차고, 허벅지로 차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마로 헤딩을 하지를 않나. 아프다는 소리도 못 지르는 축구공을 별의 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못살게 군다. 요사이 만만한 것은 홍어 X이 아니라 축구공이다. 대한민국 태극전사들의 발길질에 부디 영광이 있기를 비는 마음 한결같다.

 

© 서 량 2010.06.21

-- 뉴욕중앙일보 2010년 6월 2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