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07. 천안함, 가라앉다

서 량 2010. 5. 24. 20:23

 2010 3 21일에 우리의 해군함정 천안함이 졸지에 두 동강이 나면서부터 하늘은 더 이상 편안하지 않았다. 엊그제 5 20일에 대한민국 정부는 철두철미한 자료분석을 통하여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었음을 증명하여 세계만방에 공포했다. 같은 날 뉴욕 타임즈는 "The South insists that the sinking of its warship deserves punishment." (남한은 천안함의 침몰에 대하여 마땅히 응징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라며 대서특필했다.

 

‘punish’는 누구를 꾸짖는다는 의미보다 상대에게 타격을 주거나 불이익을 야기시킨다는 뜻으로서 1801년에 생겨난 권투용어 슬랭이었다. 이 말은 서로 대적하는 쌍방이 사각의 링 속에서 심판의 엄격한 주도하에 상대를 쓰러뜨리는 스포츠 정신에서 유래한다. 1941 12월에 발생한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나 1987년에 북한이 대한항공을 격추하여 115명의 인명을 앗아간 만행 따위에 대하여 역사가 파울(foul) 판정을 내리면서 일본과 북한에게 퇴장 선언을 내린 것이나 크게 다름이 없다.

 

 ‘punish’와 비슷한 말로서 14세기부터 쓰인 ‘chastise: 벌하다; 혼내주다는 또 어떤가. 이 말은 처음에 경고한다는 의미였는데 나중에 정조를 지킨다는 뜻으로도 변천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는 중세의 무사들이 아내 아랫도리의 절제심을 믿지 못해서 고안해 낸 구질구질하고 치사하고 어처구니 없는 장치를 ‘chastity belt: 정조대라 했다.

 

 뉴욕 타임즈지는 북한이 천안함을 파괴한 행위를 테러라 지칭한다. 그런 발언은 오사마 빈 라덴이 2001년에 뉴욕시 쌍둥이 빌딩을 졸지에 파괴했던 기습작전과 대동소이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리라.

 

 ‘terror’ 14세기경 고대불어 ‘ terreur’,  같은 시기 라틴어의 ‘terrorem’에서처럼 원래 지독한 공포라는 뜻이었고 전인도유럽어로 ‘tre’는 무서워서 부들부들 떤다는 의미였다. 같은 말 뿌리에서 ‘tremble: 벌벌 떨다'‘tremor: 떨다도 생겨났다.

 

 공포나 경악보다 무서움의 순도가 약간 약한 말로 ‘dread’란 말이 있는데 우리말로 두려움이라 한다. 흑인들이 즐기는 헤어스타일을 일컫는 ‘dreadlocks'는 당신 새끼 손가락 너비 반 정도의 굵기로 머리칼을 미세하게 땋아 놓은 스타일인데 일견 좀 섬찟하고 무섭게 보인다.

 

 ‘fright’는 문자 그대로 깜짝 놀라거나 경악한다는 뜻. ‘fright’에서 ‘r’을 빼면 ‘fight’가 된다. 그렇다. 동물이 깜짝 놀라는 순간에 어처구니 없는 공격성이 생기는 수가 허다하다. 고양이 앞에서 궁지에 몰린 쥐 한 마리가  사생결단으로 덤벼들어 꼴사납게 싸우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당신은 ‘fight or flight’라는 개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동물왕국의 생리를 그린 말이다. 북한이 지난 해 화폐개혁 이후로 경제의 하락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는 보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사람들이 김일성 이후 3대에 걸친 한 가족이 자행하는 정치권력의 세습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실정에 대해서는?

 

 작금의 김정일은 지독한 위기에 처해있다. 그는 궁지에 몰린 쥐의 형국에서 무모하게 남한을 공격하여 천안함을 파괴한 것이다. 머지 않아 북한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스포츠 정신에 크게 어긋난 비겁한 행동을 한 대가로서 뉴욕 타임즈가 지적한 것처럼 김정일은 머지 않아 응징의 벌(punishment)을 받아 마땅하다.

 

© 서 량 2010.05.24

-- 뉴욕중앙일보 2010년 5월 2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