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05. 어려운 시절이 닥쳐 오리니

서 량 2010. 4. 26. 15:21

 팔팔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한두 달 후에 1988 10월에 개봉된 코메디 영화 'Punchline'을 당신은 기억할지 모른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인 'Sally Field'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화려한 'standup comedienne(혼자 하는 개그우먼?)'을 꿈꾸는 여자로서 'Tom Hanks'에게 사사를 받는다. 'comedienne' 'comedian'의 여성형.

 

 그녀는 영화 첫 부분쯤에서 관중 앞에서 말한다. 

 

 "What does a Polish girl get that's long and hard when she gets married?" (폴란드 여자가 결혼을 했을 때 얻는 길고 딱딱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때 관중에서 누가 대뜸 답하기를 "It's a long hard last name."(그거야 길고 어려운 성씨지요") 이라 한다. 그 순간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hard'에는 딱딱하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어렵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어네스트 헤멩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의 문체를 'hard-boiled(냉혹한; 간결한)'라고 하지 않았던가. 간결한 말은 사실 그 뜻을 풀이하기가 매우 어렵다.

 

'Sally Field'가 뜻했던, 한 여자가 폴란드 남자와 결혼을 했을 때 얻는 'long and hard(길고 딱딱한) '은 다분히 성(性)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그런 음란한 연상을 뒤집어 엎는 발상으로 폴란드 사람들 성씨처럼 길고 '어려운' 남편의 성(姓)을 얻게 된다는 재치 있는 유머였던 것이다.

 

 워낙 딱딱하다는 의미의 'hard'라는 중세 영어는 1973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야구용어, 'hardball'에서처럼 거칠고 비타협적인 생각이나 태도를 일컫는 의미가 파생됐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그보다 훨씬 전, 남자의 음경이 발기하는 상태를 'hard-on'이라 하기 시작한 것이 1893년이었거늘.  

 

 우리의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으로 돌아가자. 당신이 좋아하는 스테펀 포스터(Stephen Foster:1826-1864)가 작사 작곡한 'My Old Kentucky Home(켄터키 옛집)'의 가사를 곰곰이 들어보시라.

 

 켄터기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 새는 날을 노래 부를 옥수수는 벌써 익었다 / 마루를 구르며 노는 어린 세상을 모르고 노나 / 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쉬어라 켄터키 옛집.

 

 이 곡은 이윽고 '잘 쉬어라 쉬어, 울지 말고 쉬어~'하는 코러스로 이어지는데 그 직전 '어려운 시절이 닥쳐 오리니'의 원문이 'By and by, hard times comes a-knocking at the door(머지 않아 어려운 시절이 문을 두드릴 것이니)'로 나와 있다. 꼭 요사이 세태를 말하는 것 같다.

 

 딱딱한 것이 강한 것이라는 연상에서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에헴, 자고로 영어에서 'st'로 시작하는 영어는 참으로 남성적인 의미를 지닌다. strong(강한), stiff(뻣뻣한), stout(굳센) strict(엄격한), stamina(지구력; 스태미나), stick(막대기), 따위가 그 좋은 예.

 

 'sm'으로 시작하는 영어는 또 어떤가. small(작은), smack(쪽 소리가 나는 키스), smile(방긋 웃다; 생글생글 웃다), smart(총명한), smooth(매끈매끈한), smite(호리다; 홀딱 반하게 하다) 같은 말들.

 

 't' 발음에서처럼 혀끝이 입천장을 치는 발음은 다분히 공격적이다. 반면에 'm'에서처럼 입술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발음이란 도무지 부드럽기만 한 것을.

 

 

© 서 량 2010.04.26

-- 뉴욕중앙일보 2010년 4월 2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