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식탁 / 조성자

서 량 2010. 4. 13. 04:06

 

식탁

 

     조성자

 

죽음의 비법을 빼내 유포시키며 

여자는 앞치마에 손을 쓱쓱 문지른다

 

지져지고 볶아지고 데쳐져 

이빨 사이에서 발끈하게 도는 생기 

피를 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칼과 창은 

갈비뼈의 살점을 발라내며 허기를 다독인다 

뉴질랜드산 홍합의 감촉

북해도산 고등어의 퍼덕이는 비릿함이

유리접시 위에 나란히 눕는다 

먼 길을 흘러, 흘러 한자리에 모였구나 

너의 일생은 어떠했느냐?

나는 이랬었단다

은수저가 퍼 나르는 이야기가 

식도를 타고 넘어 간다

누구나 한 때는 바둥대다가 필사적이다가 

운명의 접시 위에 조용히 눕게 마련인 것 

한 묶음의 백합이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숨 길게 토해낸다

새로운 식습관에 맞춰

점점 비트 강하게 변해가는 바이올린 선율은

싱싱한 전리품만을 거둬들이는 천년 권좌의 늙은 왕

무한권력의 얼굴을 쓰다듬고 

 

죽음으로 사라지는 지상의 족속들

순종의 제사가 샹들리에 아래 빛난다

 

「문학청춘」 2009년 가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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