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젖무덤을 내려놓다 / 한혜영

서 량 2010. 4. 10. 00:41

    

 

     젖무덤을 내려놓는다

 

                                  한혜영

 

     브래지어를 안 하고는 대문 밖을 나가면

예의범절에 절대적으로 어긋나는 줄 알았던

나는 종종 노 브래지어로 룰루 랄라 외출을 하네

풍성한 겉옷으로 위장하거나 팔짱을 끼거나

아무튼, 평생을 받들어 모신 젖무덤도

이제는 귀찮고 하찮아졌다는 말을 하려는 거네

한때는 자랑이었던 여자를

여자이게 했던 젖무덤을 점점

하찮은 곳으로 내려놓기 시작했다는 말


숨 막히기는 평생을 받들어 모신 그대도 마찬가지지

옥죔과 근지러움을 견디며 살아온 날들에게

이제는 침 뱉고 싶어 밥상도 그대도

우당탕 퉁탕! 소리가 나게 함부로 놓고만 싶어

관습 따위는 모조리 팽가치고 싶다는 생각 

현명하다고 할 순 없지만 폭력의 단맛 내지

자유의 참맛을 깨달아가는 중이라고나 할까

젖무덤 함부로 내려놓을 나이가 되면

여자는 하늘도 받들어 모실 수가 없게 된다네


<시와 경계> 2009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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