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語)를 타고 평생을 간다
한혜영
인생을 부리는 것은 9할 9푼이 말(言語)이다 자다가도, 죽음 직전에도 말 잔 등 에 올라야 한다 죽겠다는 말은 그래서 함부로 할 게 아니다 말 때문에 다 저녁때 끄덕끄덕 사막으로 들기도 하고 감옥이나 찻집엘 가기도 한다 가벼운 농담이라도 함부로 하지 마라 밥이나 술 산다는 약속조차도, 사랑한다는 농담 한마디 잘못한 배우 날뛰는 악몽에 머리끄덩이 잡혀 밤새 혼나는 것도 봤다 불가능이라고는 없던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한 것은 말 달릴 때를 놓친 게 원인이다 말은 눈도 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제 몸에 입력된 정보대로 귓속을 향해 돌진할 뿐, 권력이나 비밀을 가진 자는 더 조심스럽게 말을 몰아야 한다 내 말(馬)이든 네 말(馬)이든 말굽에는 요란한 편자가 있으므로, 가다가 말이 말을 만나면 교미를 해서 눈덩어리처럼 거대한 말을 중도에 낳기도 한다 말 잔등에서 엉덩방아 크게 찧을 때는 대부분이 이런 때이다 누군가의 말이 내게로 오거나 아니면 내 말이 어딘가로 가거나 평생 말에서 말로 곡예사처럼 옮겨 타다가 끝마치는 것이 인생이다 별 것도 아닌
<현대시학> 2010년 2월
'김정기의 글동네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려라 불면 / 조성자 (0) | 2010.04.13 |
---|---|
젖무덤을 내려놓다 / 한혜영 (0) | 2010.04.10 |
약속을 생각하다 / 한혜영 (0) | 2010.04.10 |
3월의 어항 / 최양숙 (0) | 2010.03.28 |
산수유 마을 / 최덕희 (0) | 2010.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