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어느새 우리는 시를 쓴답시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기교를 익혔습니다. 바람에 내장된 불순물이며 간이역에 멈춰선 기차가 한숨 쉬듯 뿜어내는 일산화탄소, 먼 들녘 헐벗은 나무들이 몰래 뱉는 가래침 따위가 눈 위에 뿌려지면 우리 어릴 적 꿈결같은 백설공주의 순결이 한참 더럽혀지고 아, 우주는 참으로 신바람 나게 불결하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지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와 사이 좋게 함께 사는 생명들은 무진장 불결합니다. 새로운 백설이 현생과 이생을 가로질러 지구를 순백의 힘과 차가운 논리로 도배를 합니다. 독재자의 발언만큼이나 번복에 번복을 거듭하며 눈이 너불너불 내리고 또 내립니다. 김형이나 나나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하는 항의를 제출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드디어 눈이 멎습니다. 별 큰 이유 없이 울음을 뚝 그치는 간난아기처럼. 그리고 우리 아버지이신 신(神)은 내가 언제 그렇게 내숭을 떨면서 지상을 말끔히 세척하려 했다더냐? 하며 시치미를 뚝 따는 겁니다. 오리발을 내미시는 우리 아버지도 한갓 불경스러운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을.
© 서 량 201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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