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수필

가마솥과 아궁이 / 최덕희

서 량 2010. 3. 6. 03:21

가마솥과 아궁이

 

              최덕희                             

 

 

페치카에 장작을 넣는다.

불 피우는 일은 전적으로 남편 담당이었었는데 언제부턴가 혼자 있을 때도 불을 지핀다. 폐지로 불쏘시개를 하니 쓰레기가 반으로 줄었다. 어떤 때는 불이 충분히 붙었는데도 활 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그 열기를 몸 전체로 느끼고 싶어서 계속 신문지를 찢어 넣는다.

갈수록 재미가 있다. 불장난하는 아이들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부터 남편은 차를 타고 오갈 때 마다 건축현장이나 특정한 장소에서 버려지는 나무들을 주워다 알맞은 크기로 잘라 쌓아놓기 시작했다. 나무마다 그 특성에 따라 타는 모양이 다르다.

타닥 타닥 불똥을 튀기며 빨리 타버리는 나무는 화력이 세다는 장점이 있고, 통나무처럼 서서히 안으로 타들어 가면서 오래가는 나무는 불이 늦게 붙고 화력이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우리 인간의 성격과도 흡사하다. 다혈질인 사람은 성질이 급해서 팔딱 팔딱 뛰다가 쉽게 풀어지는가 하면 속이 무던하다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신중한 반면에 한 번 결단을 내리면 단호한 점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한없이 인정이 많아서 눌린 톱밥처럼 오래 타며 화력도 적당히 따사롭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은 부러진 솔가지를 한 아름 주워왔는데 이게 또 색다른 운치가 있었다. 은은하게 솔향을 풍기며  불이 붙은 가지 끝마다 빨간 열매가 달린 듯하고 솔방울은 크리스마스 츄리에 매달린 것처럼 금빛으로 빛나며 타고 있었다.

저녁마다 페치카에 불을 피우면서 남편은 안락의자에 길게 몸을 눕히고 신문을 보며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나른함을 즐긴다. 때로는 감자를 구워 버터와 치즈를 곁들여 먹거나 군고구마와 차 한잔의 행복을 맛본다. 장작을 적당히 태운 후 벌겋게 달아오른 숯 위에 석쇠를 올려 놓고 삼겹살을 구우면 기름기가 빠지면서 맛이 기가 막히다. 생선도 오븐에서 구우면 팬을 돌리고 양초를 켜놓고 해도 며칠동안 그 비린내가 집안에 진동했었다. 지금은 굴뚝을 통해서 그 타는 연기와 냄새가 다 빠져버려 원하는 때에 마음놓고 생선구이를 먹을 수있게 되었다. 불을 피우면서 또 확연히 느낀 것은 집 안의 습기가 없어져서 공기가 쾌적해 졌다는 것이다. 날마다 코로 화기를 들이 마시니 알러지도 많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 어렸을 적에 시골 외할머니 댁에는 아궁이라는 것이 있었다. 따끈 따끈하게 달궈진 부뚜막에 앉아서 할머니가 긁어 주시는 가마솥 누릉지를 과자처럼 오독 오독 먹었다. 온돌방에서 밍크담요를 뒤집어 쓰고 한 잠씩 자기도 했었다. 그 시커먼 아궁이가, 울퉁불퉁한 부뚜막이 지금의 흙침대나 사우나의 불가마와 다를게 무엇인가? 아낙네들은 무명속곳에 터진 치마를 입고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서 끼 때마다 불을 지피면 그 화기로 인해 부인병이 자연치료 되었다고 한다. 불은 우리 인간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음식을 조리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소각하고, 철을 연마하여 농기구와 무기와 각종기계를 만들며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불은 또한 매우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장작더미를 보며 두려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매 해 화재로 인한 재산과 인명피해가 어마어마하다. 초등학교 때는 해마다 불조심 표어나 포스터를 학교숙제로 내 주곤 했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담뱃불도 조심 조심등의 표어나 건물이 불타는 그림들을 그리느라 빨간 크레용이 먼저 닳아 없어졌었다. 학교에서 불조심 홍보영화를 보여주어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우리에게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도 그 것을 잘 관리하고 선한 목적으로 적절하게 사용해야 그 진가를 발휘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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