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삭제한다는 것 / 최양숙

서 량 2010. 2. 16. 10:33

 

삭제한다는

 

      최양숙

 

 

지난 시간 토막을 잘라

줄씩 다시 풀어내어

선택받지 못해 닫혀있었던

문을 열고 들어가

새로이 시간을 쓴다.

 

시간도 수정하고

세상도 수정하고

삶도, 죽음도 삭제하고 

나를 삭제하고

삭제한 것도 삭제한다.

 

남긴 것이 없는

그믐의 검은

빛을 지운 자리에

달이 돋아나오는

만월이 시작된다.

 

새로 열은 시간 속에

침묵의 길이 말을 하면

막혔던 가슴이 귀를 열고

등에서 솟아나는

가지 끝마다 나비들이 날아와 

바람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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